지난해 말 제로 코로나 정책을 접고 경제 활동을 재개한 중국에서 소비 회복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은행 신규 대출이 4조9000억 위안(912조원)에 육박해 월간 최고치를 기록했고 경기 활력을 보여주는 택배 물량은 한 달여 만에 100억건을 넘어섰다.
12일 중국 인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위안화 신규 대출은 4조9000억 위안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9288억 위안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기업 단위 대출이 4조6800억 위안으로 95.5%를 차지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춘제 연휴 때문에 1월 근무일이 줄었는데도 공상은행, 농업은행 등 국유 대형은행의 신용대출은 최근 3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경제 회복이 빨라지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라고 전했다. 이어 신규 대출이 주로 제조업, 인프라 건설, 과학기술 및 혁신 등 중점 분야에 대한 투자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중국 민영 민생은행의 원빈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제 회복이 가속화되면서 시장 주체의 자금 조달 수요가 크게 늘었다”며 “은행 신용 대출 속도가 뚜렷하게 선행하면서 시장 활력을 자극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소비 회복 조짐은 일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 국가우정국은 올해 들어 지난 8일까지 39일 동안 전국의 택배 물량이 100억건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코로나 확산 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40일 앞서 100억건을 돌파했다. 이달 들어 전국 하루 평균 택배 물량은 3억3000만건을 넘어섰다.
인구 14억명의 중국에서 택배 산업은 도시와 농촌, 온라인과 오프라인, 생산·유통·소비를 연결해 경기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독특한 창구로 간주된다. 중국은 지난해 말 기준 990개의 현(縣)급 공공배송 센터와 27만8000개의 촌(村)급 지점을 설치해 배송망을 촘촘히 했다. 국가우정국은 “택배 산업은 소비 시장의 활력이 회복되고 경제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상하이 푸둥, 저장성 항저우, 광시좡족자치구 난닝, 산시성 시안 등의 물류 거점에서 중국산 전자제품 출항과 해외 제철 해산물 입항이 늘어나는 등 국제 화물 운송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춘제 연휴 직후 후베이성 우한 경제기술개발구에 위치한 둥펑혼다자동차 공장은 1시간에 70대의 완성차가 출고될 정도로 쉴 새 없이 돌아갔고, 세계 최대 잡화 공급처인 저장성 이우 시장은 지난 2일 개장하자마자 전국의 바이어가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고 전했다. 중국무역촉진위원회는 최근 160여개 외국인투자기업과 외국상공인협회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9.4%가 올해 중국 경제 발전 전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중국 전역의 소비 촉진 분위기와 달리 지난 3년간 계속된 코로나 봉쇄로 역대 최대 재정 적자를 기록한 지방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중국 매체 제일재경은 31개 성·자치구·직할시의 올해 예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공무 접대비, 해외 출장비, 차량 구입 및 유지비 등 이른바 3공(公) 경비가 대폭 줄었다고 보도했다. 충칭시는 120억 위안(2조2000억원), 베이징시는 40억6000만 위안을 삭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재정부는 지난해 재정 수입이 28조1600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6.3% 감소했지만 지출은 37조1200억 위안으로 3.1% 증가해 재정적자가 8조9600억 위안으로 집계됐다고 최근 발표했다. 코로나 확산 초인 2020년의 적자 수준을 넘어섰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