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의 부실·늑장 대응에 튀르키예 민심이 분노로 들끓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 강진 이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생존자 구조는커녕 이재민 생계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1999년 이후 총리와 대통령을 오가며 24년간 철권통치를 이어온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대 정치적 위기에 휩싸였다.
뉴욕타임스(NYT)는 11일 “튀르키예 국민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타오르는 상황”이라며 “당국의 늑장 구조와 전무하다시피 한 이재민 생계 대책으로 에르도안 정부는 민심을 완전히 잃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지진이 발생한 튀르키예 동남부는 중동과 가까운 지역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 기반인 곳이다. 이곳 주민들은 에르도안이 이전 정부의 서구 민주주의·세속주의 노선을 배척하고 이슬람 중심주의를 주창할 때 이를 가장 열성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이번 강진으로 사망자가 수만명에 이르자 ‘5월 21일 대선에서 절대 에르도안에게 투표하지 않겠다’는 주민이 급속히 늘어나는 양상이다.
한 주민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지진 발생 일주일이 넘었는데 아직 우리 가족은 집도 잠자리도 음식도 없다”며 “당국은 생존자 구조는커녕 살아남은 사람들의 추위조차 해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아무 장비 없이 마지못해 지진현장으로 나온 정부 구조대를 보면서 다시 한번 ‘에르도안에게 표를 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민심의 분노가 거세지자 에르도안 정부는 이번 지진에 붕괴된 건물의 건설업자를 대거 체포하고 있다. NYT와 CNN 등은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통신을 인용, 정부가 ‘지진 범죄 수사대’를 설치해 10개 주에서 건설업자 100여명을 부실공사 혐의로 구금했다고 전했다. 튀르키예 법무부는 1999년 강진 이후 시행된 내진 규정을 제대로 지켰는지를 조사한 뒤 불법·탈법 사실이 드러날 경우 건설업자 등 책임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도록 일선 사법당국에 지시한 상태다.
NYT는 “250세대 아파트 단지 전체가 붕괴된 뢰네산스 레지던스 건설업자와 가지안테프 건물 단지 건설업자 등 업계 거물들이 대거 구금됐다”며 “붕괴된 건물을 부실 감독한 공무원 등도 포함됐다”고 전했다.
튀르키예 재난관리국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은 무려 1만2000여채에 이른다. 1만7000여명이 사망한 99년 북서부 대지진 이후 대폭 강화된 내진 규제가 건축 현장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았던 셈이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