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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만명 절망의 피난길… 실낱 희망마저 꺼지고 있다


14일(현지시간) 튀르키예 강진 최대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가지안테프 공항은 붐비는 인파에도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몇몇 아이들이 가끔 재잘대는 목소리를 냈을 뿐 어른들은 하나같이 침묵 속에 의자에 기대 눈을 뜨고 감기를 반복했다.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등 튀르키예 도시로 국내선이 연결되는 이곳은 이날 오전부터 지진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는 힐미(22)는 20년 동안 줄곧 살아온 고향을 떠나 앙카라행 비행기에 올랐다. 힐미의 가족은 지난 6일 지진 당시 운 좋게 모두 무사히 빠져나왔지만 집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이들은 첫 사흘은 차에서, 이후 사흘은 학교에서 지내다가 결국 친척이 있는 앙카라로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힐미와 그의 가족들은 “이번은 신이 도우셨지만 다음에는 어떨지 모른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우선 앙카라에서 한 달간 머물면서 여진의 위험이 사라졌다는 확신이 들면 돌아올 예정이다. 힐미는 “그동안 내겐 경찰 시험 합격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데, 이번 일을 겪은 뒤엔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접 피해를 당하지 않았지만 눈앞에서 참상을 본 시민들도 피난길에 올랐다. 이스탄불에서 파견을 나온 공무원 A씨는 “지금 이곳엔 집을 잃은 사람들보다 지진이 다시 닥칠까 두려워 다른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푸아트 옥타이 튀르키예 부통령은 이날 40만명이 피해 지역을 빠져나갔다고 밝혔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두 나라의 이날까지 사망자는 3만7000여명으로 2003년 이란 대지진(사망자 약 3만명)의 피해 규모를 뛰어넘었다. 이번 지진은 21세기 들어 다섯 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낳은 자연재해가 됐다.

기적의 생환은 계속됐다. 튀르키예 남부 카라만마라슈에서 10세 소녀가 건물 잔해에 갇힌 지 183시간 만에 구조됐고, 하타이주 마을에서는 13세 소년이 182시간 만에 햇빛을 볼 수 있었다. 13일 오전 안타키아에서는 매몰된 지 176시간이 지난 여성이 구출됐고, 가지안테프주의 마을 이슬라히예에서는 40대 여성이 매몰 170시간 만에 살아서 돌아왔다.

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추가 생존자 구조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있다. 에두아르도 레이노소 앙굴로 멕시코국립자치대 공학연구소 교수는 “5일이 지나면 생존 가능성이 매우 작아지고, 9일 후에는 0%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반영돼 구조 인력들도 실종자·매몰자 구출보다 2차 재난을 막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영하의 추위와 추가 여진의 우려, 치안 문제 등이 생존자를 위협하고 있어서다. 혼란을 틈타 약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튀르키예 8개 주에서는 하루에만 48명이 약탈 등 혐의로 체포됐다. 하타이주에서는 구호단체 직원을 사칭해 트럭 6대분의 식량을 가로채려 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지안테프=이의재 기자, 박재현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