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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도시’에 남은 무스타파, 막막함에 눈물만 뚝뚝


15일 오후(현지시간) 찾은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주 도시 이슬라히예는 부스러지기 직전의 곤충 허물처럼 보였다. 진앙과 이곳 사이의 거리는 단 40㎞. 약 6만명이 살던 이곳은 대지진으로 한순간에 ‘유령 도시’로 전락해버렸다.

시내 한 건물 붕괴 현장에선 포크레인 두 대가 잔해를 헤집으며 혹시 모를 생존자를 찾고 있었다. 이곳에선 지난 13일 지진 발생 170시간 만에 40세 여성이 기적적으로 구출됐다.

이슬라히예에 허락된 ‘기적’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이후 생존자는 더 발견되지 않았고, 지금은 구조 작업을 지켜보던 시민들마저 도시를 비우고 떠나버린 상태다. 주변을 순찰하던 헌병대원은 “여기서 사람을 구하는 일은 사실상 끝났다”며 “이젠 전부 허물어버릴 일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오래된 건물이 많던 이 도시는 지진에 속수무책이었다. 건물 절반은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박살이 났다. 남은 건물은 금이 가거나 눈에 보일 정도로 기울어져 도저히 사람이 머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헌병대원과 군인들, 그리고 쓸 만한 세간을 골라 차에 싣는 주민들뿐이었다.

저녁이 되자 도로 한복판에서 모닥불이 한 줄기 피어올랐다. 40대 남성 무스타파의 가족들이 피운 불이었다. 그의 가족은 무너진 집 정면의 자동차도로 중앙 화단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고 있다. 9명에 이르는 무스타파의 자녀들이 텐트에서 줄줄이 나와 불 옆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지진 당시 집 밖으로 무사히 빠져나왔지만 그 뒤 지낼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무스타파는 이곳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시리아 출신 난민이다. 튀르키예어를 모르고 아랍어만 할 줄 안다.

텐트가 자리 잡은 도로 한복판은 어린아이들이 살기엔 너무 위험했다. 도시는 비었지만 이곳을 경유하는 차량은 끊이지 않았다. 속도를 끌어올린 차들이 배기음을 내며 텐트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차들을 지켜봤다.

난민인 무스타파는 그동안 페인트공 등 일용직으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도시가 텅 비면서 앞으로는 이조차 어려워질 전망이다. 그의 텐트는 이재민이 몰려 있는 곳에서 떨어져 있어 정부나 단체의 구호품이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무스타파는 그대로 머무르기를 선택했다. 그는 “어쩔 도리가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진 발생 11일째인 16일에도 기적의 생환 소식이 이어졌다. 지진 발생 약 248시간 만에 남부 카라만마라슈에서 17세 소녀가, 하타이주에서 13세 소년이 약 229시간 만에 구조됐다.

한편 튀르키예와 시리아에는 구호에 동참한 이웃 나라들과의 ‘해빙’ 바람이 불고 있다. 튀르키예는 이날 30년간 단교했던 아르메니아와의 관계를 완전히 회복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아르메니아는 지난 11일 구호물품 전달을 위해 양국 간 국경을 개방했다. 그리스의 대규모 구조대가 튀르키예를 방문하면서 ‘에게해의 영원한 앙숙’ 관계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후 냉랭했던 시리아와 주변 아랍국가 사이에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지난 14일 사우디아라비아가 의약품 35t을 시리아 북부 알레포에 보낸 데 이어 15일에는 아이만 사파티 요르단 외무장관이 시리아를 방문했다.

이슬라히예=이의재 특파원, 백재연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