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살인 혐의로 징역 82년을 선고받은 뒤 ‘모범수’로 가석방된 한국인 이민 남성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추방될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남성은 자신의 추방을 막아 달라며 청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 등에 따르면 3년 전인 2020년 가석방된 한인 저스틴 정(33)씨는 모국(母國)인 한국으로 추방될 예정이다. 그는 16살 때 저지른 살인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영주권 신청 기회를 놓쳤다. 정씨는 가족을 미국에 두고 한국에 돌아갈 수 없다며 선처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씨는 자신의 사연을 팟캐스트 방송과 틱톡 영상 등으로 최근 공개했다. 정씨 부모는 정씨가 2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떠나왔다고 한다. 어머니는 비디오 가게와 햄버거 가게에서 일했고, 나중에는 아버지와 함께 LA에서 작은 옷가게를 열었다고 한다.
정씨는 어린 시절 방과 후 늘 집에 혼자 남겨졌다고 했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그는 점차 엇나가기 시작했다. 16세 때 한인 폭력 서클 ‘코리안 보이즈’에 들어갔고, 곧 사고가 벌어졌다.
정씨는 2006년 8월 LA 인근의 한 파티에 동료들과 참석했다가 다른 한인 폭력 서클과 충돌했다. 자신들을 중국인으로 오해해 벌어진 사건이었다. 5명과 패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정씨가 총격을 가해 남성 1명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뇌사 상태에 빠진 뒤 결국 사망했다.
숨진 남성은 싸움을 벌였던 한인 폭력 서클과 관계가 없는 시민이었던 것으로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 남성은 정씨처럼 8살 무렵 미국에 온 대만계 미국인 황모(21)씨로 사망 당시 농구를 즐기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고 한다. 황씨는 사건 당일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을 치고 집에 가던 중 변을 당했다.
이듬해 10월 캘리포니아 포모나 법원은 정씨에게 1급살인 혐의를 적용해 징역 82년을 선고했다. 수감된 정씨는 교도소 생활을 성실히 하면서 모범수로 감형받았다. 14년을 복역한 끝에 2020년 6월 가석방됐다. 그는 당시 교도소 내에서 이발사로 일하면서 재소자 머리를 다듬어주고 성경 공부를 했다고 한다.
출소 후 그에게는 곧 ‘추방 명령’이 내려왔다. 오랜 수감 생활로 미국 영주권 신청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정씨는 가중중범죄를 저지른 비시민권자를 추방하는 법 규정에 따라 이민국에 다시 구금됐고, 이후 이민국은 전자발찌 부착과 정기적인 거주지 보고를 조건으로 정씨를 풀어줬다.
캘리포니아 부에나파크의 오네시모 선교회에서 일하고 있는 정씨는 추방 사면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2살 때 와서 30년 동안 산 미국이 내 나라”라며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게 추방 사면을 요청했다. 그는 청원을 통해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에 머물고 싶다”며 뉴섬 주지사에게 사면 메일을 보내 달라고 했다. 현재 이 청원에는 약 5700명이 동의했다.
정씨는 SNS를 통해 자신의 사연을 밝히며 “피해자와 그 가족이 받았을 고통에 대해 매일 생각한다”며 “나의 그 어떤 행동도 변명의 여지가 없고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 역시 사면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했다. 그는 “만일 사면된다면 최대한 정직하게 살아가며 지역사회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한 시청자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간 대가로 징역 14년도 부족하다”고 지적하자 정씨는 “내가 한 일에 대해 정말 미안하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되돌려 놓고 싶다”고 말했다.
유족은 반발하고 있다. 유족은 “정씨가 취하는 일련의 행동은 우리가 가족을 잃었을 때 느꼈던 고통을 다시 느끼게 한다”며 “우리가 겪은 일에 비해 정씨가 받은 추방 결정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했다.
피해자 황씨의 친구는 “정말로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그냥 한국으로 가라. 그게 내 친구의 목숨을 앗아간 것에 대한 대가”라며 “이 또한 하나님이 당신에게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