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서른 한 살 동갑내기 부부 타라스 멜스터와 올라 멜스터는 같은 시간, 같은 참호에서 전사했다.
수도 키이우에서 정보통신(IT)업체를 함께 운영하던 두 사람은 지난해 2월 24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침공 소식을 듣자마자 자원병 입대 신청서를 냈다. 이미 결혼한데다 징집 대상도 아니었지만 조국의 위기를 수수방관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그날 “죽을 때까지 함께 나라를 지키자”고 맹세했다. 키이우시의 수비대에 처음 배치된 뒤 컴퓨터공학 전공자인 타라스는 수비대 통신망 운영팀에서, 올라는 간호병으로 일했다.
해가 뜰 때마다 전황이 급박해졌다. 두 사람이 속한 수비대는 동부 돈바스 지역으로 재배치됐다. 다소 평화롭던 그들의 군 생활은 러시아군 공격을 매일 견뎌야 하는 최전선의 삶으로 바뀌었다.
지난 6월 18일 오전 두 사람이 속한 수비대는 러시아 최정예 체첸군과 바그너그룹 선봉대를 막고 있었다. 타라스는 최전방 참호 속에 있었고, 올라는 수비대 지휘부 사무요원이었다. 상대의 맹공이 이어지자 올라는 참호로 가겠다고 보고한 뒤 기관총을 들었다.
수비대장이 만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남편과 떨어져서 걱정이나 하며 여기 앉아있고 싶지 않아요.”
올라는 힘껏 전방 참호로 달려갔고 남편 바로 옆에 웅크리고 앉았다. 참호 안의 동료가 “여성은 위험하다”고 하자 두 사람은 “진짜 위험한 건 우리 둘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답했다.
갑자기 엄청난 포격이 가해졌고 참호는 아수라장이 됐다. 참호 안 10여명 가운데 살아남은 자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타라스와 올가는 서로 손을 굳게 잡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건 여덟 살 때였다. 인구 23만명의 키로보흐라드 시내 유태인 공동체에서 태어난 그들은 처음 만난 날부터 가까워졌다. 함께 초·중·고교를 다닌 뒤 키이우 대학에 나란히 진학했고, 졸업 후 스물 다섯 살이 되던 2016년 결혼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그들은 결혼했고, 같이 싸웠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함께 사망했다’ 기사에서 “이 부부의 운명이 러시아의 침공으로 180도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부부는 참전 첫날부터 자신들의 웹사이트와 SNS에 전쟁 일기를 썼다. “여기 있는 모든 게 다 좋다. 전선은 아무 이상이 없다.” 죽기 전 마지막 일기의 마지막 문장이다.
소설가인 올렉산드르 미크레드는 “영화 편집자, 소설가, IT기술자, 화가 등 수많은 직업인이 자원 입대해 조국을 지킨다”면서 “내 친구 올가와 타라스도 그들 중 한 쌍”이라고 말했다.
NYT는 “이번 전쟁에 투입된 우크라이나 병력의 40~50%는 단 한번도 군사훈련을 받은 적 없는 자원병”이라고 전했다. NYT는 또 부부와 같은 부대에 근무했던 장교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군을 물리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가슴 속의 의지(will of heart)’ 때문”이라면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같은 멜스터 부부의 사연은 우크라이나에선 별로 놀랍지 않은 이야기”라고 전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