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학자금 대출 탕감책이 미국 연방대법원에 의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대법원의 보수성향 대법관들은 일제히 학자금 대출 탕감책의 적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의회의 명시적인 승인이 전제돼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뉴욕타임즈(NYT)는 28일(현지시간)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보수성향 대법관들이 학자금 대출 탕감책의 적법성을 따지는 첫 심리에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막대한 정치·경제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정책은 미 의회의 입법 과정을 거쳐 추진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재 미 연방대법관 9명 중 보수성향 대법관은 로버츠 대법원장을 포함해 6명으로 대법원 지형 자체가 보수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바이든 행정부의 학자금 대출 탕감책을 “미국 역사상 가장 야심 차고 비용이 많이 드는 행정 조치 중 하나”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의회의 명시적인 승인도 없이 이 정도 규모의 정책을 추진한다면 권력 분립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보수성향이지만 이념적으로 갈리는 논쟁적 사안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왔다. 그는 이날 정부 측 인사에게 “대출자 절반은 탕감책과 관련 없이 대출금을 갚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학생이 받은 대출은 용서하고 잔디 관리 사업을 시작하는 젊은이가 받은 대출은 용서하지 않는다면 이게 과연 합당한 것인가”라고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날 대법원 앞에는 미국 전역에서 온 대학생 수백명이 모여 바이든 행정부의 학자금 대출 탕감책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학자금 대출 탕감책은 바이든 대통령의 2020년 대선 공약이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8월 연소득 12만5000달러 미만인 대출자와 결혼한 부부는 최대 1만 달러까지 연방정부의 학자금 대출을 탕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저소득층 장학금인 ‘무상 장학금’(Pell Grants) 대상자는 최대 2만 달러까지 빚을 없애주기로 했다.
미 의회 예산국은 이 정책에 향후 30년간 약 40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설계한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총 1조6000억 달러의 연방정부 학자금 대출을 안고 있는 4500만명 중 4300만명은 탕감 혜택을 받는다. 이 중 2000만명은 빚을 모두 탕감한다. 여기에 ‘펠 그랜트’ 대상자 2700만명은 1인당 2만달러까지 부채 탕감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공화당을 중심으로 대학과 관련 없는 납세자들이 늘어난 세수를 메꿔야 하는 불공정한 정책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가뜩이나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키울 수 있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결국 아칸소·아이오와·캔자스·미주리·네브래스카·사우스캐롤라이나 6곳의 공화당 주지사들이 이끌고 있는 주는 정책을 제지해달라며 소송을 걸었다. 해당 주들은 대출 탕감 정책이 시행되면 주정부의 세수가 급감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제8연방 항소법원은 이 주들이 학자금 탕금 정책 집행을 막아달라며 제출한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사설 기관에서 대출받아 수혜자가 될 수 없는 학생과 연소득이 12만5000달러 미만임에도 펠 그랜트 대상자가 아니라 탕감액이 최대 1만 달러에 불과한 학생 역시 소송을 걸었다.
대법원은 이날 이 두 사건의 심리를 함께 진행했으며 오는 7월 이전에는 최종 판결을 할 예정이다. 만일 보수성향 대법관들이 반대하면 바이든 행정부는 의회 승인 없이 탕감책을 추진할 수 없다. 이 경우 공화당이 하원의 다수당을 꿰찬 상황에서 탕감책이 실현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지는 셈이다.
NYT는 “두 건의 개별 사건에 대한 약 3시간30분의 변론이 끝날 무렵 법원의 보수성향 다수파는 이미 승인을 받은 수백만명을 포함해 대출구제를 신청한 2600만명의 희망을 꺾을 것으로 보였다”며 “행정부가 승소하기 위해선 두 사건의 원고 중 누구도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하지만 이 역시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