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작은 나라 몰도바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몰도바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다음 목표로 거론되면서다. 약 966㎞에 걸친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 발이 묶인 러시아가 몰도바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침공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전세계에 퍼져있다.
안나 레벤코 몰도바 내무장관은 지난달 28일 몰도바 현지방송 TVR과의 인터뷰에서 “몰도바 국내외 안보 환경이 상당히 불안정하다”며 “사법기관을 통해 안보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몰도바 당국은 키시너우 국제공항의 통제를 강화하고 공공장소에 배치되는 경찰력을 증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몰도바를 둘러싼 위기감은 즉각 나타났다. 헝가리 저가항공사인 위즈에어는 몰도바 수도 키시너우로 향하는 항공편을 오는 14일부터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앞서 우크라이나 정부도 몰도바와 인접한 국경에 병력을 추가 배치했으며 불안한 눈으로 이 지역을 지켜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지난달 22일 보도했다.
동유럽에 위치한 인구 330만명의 몰도바 공화국은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위치해있다. 국내 정치는 친러시아와 친서방 성향의 후보가 4년 주기로 번갈아 정권을 잡을 만큼 불안하다. 마이아 산두 몰도바 대통령이 이끄는 현 정부는 유럽연합(EU) 등 서방과 가깝지만, 야당은 친러시아 성향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몰도바 정부는 동부 드네스트르강 너머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에서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친러시아 세력과 오랜 기간 대치해왔다. 이 지역 주민들은 20세기 초 소련이 펼친 러시아화의 영향을 받아 러시아인으로서 민족 정체성이 강하다.
3600여명의 사상자를 낸 1992년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에 평화유지군을 보낸 러시아는 지금도 1700여명 규모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이제는 소련 시절 이 지역에 저장한 2만톤의 탄약고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러시아 침공 이후 몰도바의 우려는 내내 이어져 왔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로 발사한 미사일이 몰도바 영공을 지나거나, 그 잔해가 몰도바 영토에 떨어지기도 했다. 몰도바 정부는 지난달 14일 자국 영공으로 들어온 풍선 비행체 때문에 일시적으로 자국의 영공을 폐쇄하기도 했다.
몰도바와 러시아는 서로에게 현 위기의 책임을 돌리는 상황이다. 산두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러시아가 몰도바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산두 대통령은 “민간인으로 위장한 반정부활동가들이 사보타주를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러시아 국영 통신사 타스는 지난달 28일 친러 성향의 이고르 도돈 전 몰도바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산두 대통령의 동의를 얻은 우크라이나군이 친러 기조가 강한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을 공격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엄태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발칸연구소 교수는 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내세운 명분이 ‘특수 작전’이었다”며 “소수 민족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몰도바를 침공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또 “몰도바 공화국은 우크라이나의 축소판”이라며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이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