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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혜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코로나 잦아들자 이번엔 ‘독감 공포’… 마스크 다시 쓰는 중국


코로나19가 잦아든 중국에서 유행성 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베이징 등 일부 지역에선 코로나 유행이 정점에 달했을 때 수준으로 발열 환자가 늘었고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 품귀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 3년 고강도 방역 조치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잠잠해 면역력이 떨어진 데다 백신 접종률도 낮아 확산 속도가 유독 빠른 것으로 분석된다.


5일 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가 발표한 유행성 독감 보고서(2023년 8주차)에 따르면 베이징의 한 3급갑등 병원 의사는 “지난주만 해도 외래 진료 건수가 100건이 안 됐는데 이번 주 갑자기 하루 500여명으로 늘어 병원 밖까지 대기 줄이 이어졌다”며 “베이징에서 코로나가 정점에 달했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코로나 감염이 최고조였을 때 이 병원의 하루 외래 진료 건수는 600여명이었다. 상하이 병원의 호흡기 내과 의사도 “발열 환자 진료 건수가 4, 5배 늘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의사들의 업무량으로 볼 때 일부 도시에서 유행성 독감 확산이 최고조에 이른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중국 매체 봉면신문은 쓰촨성 청두에 사는 장모씨가 전날 아이의 열이 41도까지 올라 제6인민병원을 찾았는데 응급실 밖에서 4시간 넘게 기다린 뒤에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장씨는 “정오가 지나자 기다렸던 의사는 교대 시간이라 진찰을 하지 않겠다며 다른 줄에 서라고 했고 1시 반쯤엔 다른 의사도 식사를 하러 나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병원 측은 “독감 환자가 늘었고 주말 당직 의사는 적어 대기 시간이 길었다”며 “의사 수를 늘렸다”고 해명했다.

CDC는 지난달 5~11일 유행성 독감 양성률이 코로나 양성률을 웃돌았고 12~18일에는 14.3%에 달해 지난해 12월 3.4%에 비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이후 지난달 20일을 전후해 베이징과 상하이, 톈진, 저장성 항저우 등에서 독감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베이징시 위생건강위원회는 지난 2일 브리핑에서 지난달 13일부터 2주 연속 유행성 독감이 법정 전염병 중 1위를 차지했고 그 중 인플루엔자 A형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고 밝혔다. 또 유행성 독감 발병률이 높고 소아과 외래 진료 압박이 높아지는 상황에 대응해 시내 모든 의료 및 보건 기관의 진료실을 완전히 개방하고 관련 인력을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베이징 소식통은 “코로나 방역에 동원됐던 의료진이 지금은 전부 독감 대응에 투입됐다”고 말했다.

저장성 질병예방통제센터도 최근 3년 동안 독감이 유행하지 않았고 백신 접종률이 낮아 많은 사람이 감염에 취약하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최근 전국 31개 성·자치구·직할시 의료진을 소집해 전국 화상회의를 열고 독감 예방 및 조기 치료에 의료 자원을 총투입할 것을 지시했다.


독감은 39도 이상 고열과 오한, 근육통 등의 증상을 동반하고 다른 합병증이 없으면 발병 3~4일 후 호전되지만 이번에는 중증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독감에 걸린 베이징의 한 주민은 “코로나에 감염됐을 때보다 온몸이 더 쑤시고 아팠다”며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로 체력이 돌아오기까지 2주 정도 걸렸다”고 말했다.

수도의과대학 부속 베이징 여우안병원 리둥 주임은 “면역 기능이 정상인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1주일 안에 회복되지만 일부 독감의 경우 폐렴, 뇌염 등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져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면서 노마스크로 다니던 중국인들은 독감 감염 우려에 다시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독감 환자가 늘면서 베이징 일부 약국에선 치료제 타미플루 품절 사태가 빚어졌다. 온라인상에서도 주문 후 사나흘이 지나야 받을 수 있는 형편이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최근 “유비무환의 자세는 필요하지만 의약품은 일반 상품과 달리 증상에 맞게 복용해야 한다”며 “코로나 확산 당시 벌어졌던 해열제 사재기 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국에선 지난해 12월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 뒤 감염자가 폭증하면서 해열제와 항원 검사 키트, 독감 치료제 등이 동났다.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행성 독감이 급속도로 퍼지자 이중감염 우려도 커지고 있다. 왕광파 베이징대 제1병원 교수는 현지 매체에 “실험 데이터와 임상 사례 등을 봤을 때 코로나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중첩 감염되는 사례가 존재한다”며 “경계심을 높이고 보호 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코로나 확산세는 눈에 띄게 수그러든 모습이다. 중국 보건 당국은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2일까지 일주일 동안 본토 의료기관에서 코로나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밝혔다. 중국의 병원 내 코로나 관련 사망자는 지난 1월 4일 4273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계속 줄었다. 1월 5일 12만8000명까지 치솟았던 중증 입원 환자 수도 지난 2일 8명으로 집계됐다. 이와 함께 각 지역에서 보고된 코로나 감염자 수와 양성률도 지난해 12월 22일 정점을 기록한 뒤 계속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