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여학생을 타깃으로 한 독극물 공격이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최소 52개 학교가 표적이 됐다. 이란 정부는 이번 공격을 “이란 국민에게 안보 불안을 심으려는 적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최초의 독극물 공격은 지난해 11월 30일 테헤란 남쪽 성지 도시 쿰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했다. 여학생 18명이 호흡 곤란, 메스꺼움 등의 증상으로 병원에 이송됐다. 이후 3개월여 동안 50개 학교에서 여학생 수백명이 불쾌한 냄새를 맡은 뒤 같은 증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테헤란 인근 샤흐리야르에 있는 학교의 한 학생은 자신과 반 친구들이 썩은 과일 냄새와 비슷하지만 더 톡 쏘는 듯한 냄새를 맡았다고 BBC에 전했다. 그는 “많은 학생이 아파서 학교에 오지 못했고 선생님도 아팠다”고 덧붙였다.
독극물 공격이 잇따르자 피해 학생과 그 가족 등을 중심으로 이란 정부에 신속한 원인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마드 바히디 내무장관은 4일(현지시간) 여러 도시에서 독극물 중독 사건 현장 조사를 진행하던 중 “의심스러운 샘플”이 발견됐다고 전했지만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대신 바히디 장관은 국민들에게 “국내 공식 언론 매체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후속 조치를 취해달라”며 “적이 미디어 테러로 심리 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도 국영TV 연설을 통해 “적들이 학생, 부모들에게 공포와 불안을 심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적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통상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난한다고 카타르 국영 알자지라 방송은 분석했다.
독극물 공격 문제를 놓고 5일 이란 의회 내에서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란 반체제 매체인 이란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아르다빌 주 북서부 칼칼의 세예드 가니 나자리 의원은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위한 회의에서 지역의 독극물 공격 사건을 언급했다. 그러자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 소속 강경파 자바드 카리미 고도시 의원이 나자리 의원을 발언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다른 의원들도 고성을 지르는 등 나자리 의원을 제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장은 나자리 의원에게 예산안에 대해서만 발언할 것을 요청했다.
나자리 의원은 “칼칼의 학생들이 입원해 있는데 제가 무슨 얘기를 하길 바라느냐”며 “정부와 책임 있는 기관에 조사를 요구하는 게 제 의무”라고 말했다.
많은 이란 시민은 이번 공격을 ‘마흐사 아미니 사망 사건’ 관련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대한 보복 성격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정부 관리들은 ‘학생들의 장난’ 또는 ‘적의 소행’으로 돌리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이란인터내셔널은 전했다.
피해자 다수가 치료를 받은 테헤란 마시흐 다네쉬바리 병원의 모하마드 레자 하셰미안 박사 등에 따르면 범인들이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가스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다양한 화학 물질로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