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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도 놀란 ‘SVB 공포’… ‘빙산의 일각’ 우려


미국 실리콘밸리의 지방은행인 ‘SVB 파이낸셜’의 주가 폭락에 뉴욕 월스트리트 금융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타트업들과 거래하는 SVB의 채권 손실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날 뉴욕증시에서는 금융주 위주의 하락이 나타났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금융위기 사건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실리콘밸리은행의 지주사인 SVB파이낸셜그룹은 9일(현지시간) 나스닥거래소에서 60.41%(161.79달러) 폭락한 106.04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시간 외 거래에서는 21.82% 추가로 떨어진 상태다. SVB는 실리콘밸리은행의 이니셜이다.

SVB 사태의 나비효과로 나스닥의 은행주 지수인 KBW나스닥은행지수는 이날 7.1% 폭락했다. 약 3년 전 코로나19 대유행 초기 충격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미국 4대 은행(JP모건·뱅크오브아메리카·웰스파고·씨티그룹) 가치가 520억 달러 하락했다고 전했다.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미국 내 2위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가 6.2%나 빠졌다. 웰스파고가 6.18%, JP모건체이스가 5.41%, 씨티그룹이 4.1%씩 하락했다.

SVB는 전날 210억 달러 규모의 채권 포트폴리오 매각으로 생긴 손실 18억 달러를 메우기 위해 17억5000만 달러 규모의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 처분에 나섰다. 문제의 채권 포트폴리오는 대부분 미 국채로 평균 수익률이 1.79% 수준에 불과하다. 현 10년물 미 국채 금리 3.9%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다. SVB의 자산 투매의 여파는 이날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SVB 최고경영자(CEO) 그레그 베커는 이날 전화회의(콘퍼런스콜)를 통해 예치금은 안전하다며 고객들을 다독였다. 하지만 몇 시간 뒤 거물 벤처투자자 피터 틸의 파운더스펀드를 비롯한 유명한 벤처캐피털들이 투자한 기업들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SVB에서 자금을 인출할 것을 권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같은 소식은 8일 미국 가상화폐 거래 은행 실버게이트가 대규모 인출 사태(뱅크런) 우려 끝에 청산을 결정한 바로 다음 날 알려졌다. 실버게이트는 핵심 거래처였던 대형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지난해 11월 파산에 따른 뱅크런으로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지난해 3월부터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높여왔다. 이는 주식과 채권을 포함한 자산 가치로 직결되면서 자금 경색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SVB 같은 소형 은행의 자본 조달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셈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JP모건 등을 보유하고 있는 55억 달러 규모의 회사인 ‘스마드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회장 겸 최고투자책임자인 빌 스미드는 “SVB 사태는 금융 시스템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첫 신호”라며 “사람들은 이번 사태가 미국 금융 역사상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라는 심각성을 깨닫고 있다”고 WSJ에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SVB와 실버게이트가 맞물리면서 금융계 전반에 위기감이 감지됐다고 진단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해 저금리 채권 보유 비중이 높은 은행들은 손실을 보지 않고서는 이를 조속히 매각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이러한 은행들에 예금주들이 돈을 찾기 위해 한꺼번에 몰리면 악순환이 벌어질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웨일런 글로벌어드바이저의 크리스토퍼 웨일런 회장은 “SVB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면서 “큰 은행들에 대해서는 우려하지 않지만 중소 은행 다수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며, 이들 다수는 자기자본을 확충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유동성 위기가 확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미국 금융당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JP모건을 비롯해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SIFI)들의 안정성 감독을 강화했다. 반면 중소 은행들에 대해서는 혁신의 여지를 주기 위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감독을 유지해왔다.

마이클 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금융감독 담당 부의장은 “규모가 큰 기관들도 분명 이러한 위험에 노출돼있지만 대차대조표상으로 매우 작은 부분”이라면서 “동일한 자금 인출이 있더라도 (위기 확산으로부터) 더 잘 차단돼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에서는 많은 은행이 즉각적인 위기에 직면하지는 않더라도 잠재적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뱅크런 같은 현상이 없더라도 은행들이 고객들을 붙들어두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려 실적이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광범위한 지점 네트워크를 갖춘 대형 은행보다 고객을 유치하기 어려운 소규모 은행은 위험요인이 더 크다. WSJ는 “소규모 은행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대형 은행보다 더 높은 예금 금리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지난 4분기 예금에 평균 0.96%의 이자율을 지급했다. 반면 업계 평균 이자율은 1.17%, SVB의 이자율은 2.33%로 집계됐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