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나치 정권에 저항하는 운동을 펼친 ‘백장미단’의 마지막 생존자 트라우테 라프렌츠()가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자택에서 10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백장미 재단과 라프렌츠의 아들인 마이클 페이지가 그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1919년 5월 3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라프렌츠는 함부르크 의대생 시절 백장미단을 결성한 알렉산더 슈모렐과 한스·조피 숄 남매를 만났다.
백장미단은 1942년 여름 뮌헨에서 대학생들이 주축이 돼 활동을 시작한 비폭력 저항 조직이다. 단원이 수십 명에 불과했던 이 단체는 전단을 배포하고 그라피티를 남겨 나치 정권에 대한 독일인의 저항을 촉구했다. 전단에서 괴테, 쉴러, 아리스토텔레스 등을 인용해 나치 정권의 범죄와 유대인 학살을 고발했다. 어둠을 틈타 건물 담벼락에 ‘타도 히틀러’ 등 구호를 썼다. 라프렌츠는 전단지를 나르고 잉크와 종이, 봉투를 확보해 반히틀러 소책자를 생산·배포하는 것을 도왔다.
백장미단은 1943년 2월 뮌헨의 한 대학에서 전단지를 배포하던 숄 남매가 게슈타포에 체포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체포된 지 4일 만에 처형당했다. 1943년 3월 체포된 라프렌츠는 1년 복역 후 석방됐으나 1945년 4월 독일이 패전할 때까지 다시 체포되거나 경찰 조사를 받는 등 감옥을 들락날락했다.
라프렌츠는 1947년 미국으로 이주해 의학 공부를 마쳤으며 안과 의사인 버넌 페이지와 결혼해 네 자녀를 뒀다. 20여년간 에스페란자 특수학교의 교장을 맡았고, 인지학 이론을 연구했다. 라프렌츠는 2018년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그 시대의 목격자였다”면서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고려하면 나는 불평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라프렌츠는 2019년 100세 생일에 독일 정부의 공로훈장을 받았다. 표창장은 “국가 사회주의의 범죄에 맞서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독재와 유대인 학살에 항거할 용기를 가진 소수의 이들 중 하나”라면서 “자유와 인간애의 영웅”이라고 그를 기렸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