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시스템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딜레마에 빠졌다. 인플레이션과 금융 시스템 불안정이라는 복합 위기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경제 주요 부문이 여전히 강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미 중형은행들은 규제 당국에 예금 보호 확대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오는 21~2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통화 정책 결정이 금융 상황의 최대 변수가 됐다는 분석이다.
18일(현지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3월 연준이 0.25% 포인트 금리를 인상할 확률은 62%로 집계됐다. 은행 시스템 위기가 계속되고 있지만, 연준이 긴축을 지속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셈이다.
물가 지표상 추가 긴축 필요성은 높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6% 수준으로 연준 목표(2%)를 크게 웃돈다. 여기에 연준이 금리를 동결해 긴축 의지가 약화했다는 신호가 나타나면 새로운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울 여지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3월 FOMC 회의에선 올해 최종 금리 수준을 전망하는 ‘점도표’도 발표되는 데 제롬 파월 의장은 이달 초 상향 가능성을 언급했었다.
반면 전날 실리콘밸리은행(SVB) 모기업이었던 SVB파이낸셜그룹이 파산 보호를 신청하면서 제2의 SVB로 지목됐던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주가가 폭락했다. 지난 16일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 체이스 등 미국 대형 은행 11곳이 300억 달러를 긴급 수혈하며 유동성 불안을 해소하려 했던 노력이 하루 만에 물거품이 된 셈이다.
미국 중형은행연합(MBCA)은 연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 통화감독국 등 연방 규제 당국에 “은행의 추가 파산을 막기 위해 지급보증이 필요하다”며 향후 2년간 모든 예금에 대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보증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하는 서한까지 보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대형 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에 대한 신뢰가 약화했다”며 “또 다른 은행이 실패할 경우 예금 이탈이 가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형 은행들이 고객들의 뱅크런 불안감에 빠져있는 것이다.
CBS는 “금리를 인상하면 다른 대출 기관의 문제가 확대돼 공포에 질린 예금자들이 은행에서 돈을 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악시오스는 “연준이 직면한 가장 큰 딜레마는 인플레이션을 낮출 도구가 금융 위기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와 상충하는 목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라며 “연준은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해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금리 전망도 최근 2주간 요동쳤다. 페드워치에서 지난 10일까지만 해도 40%를 웃돌았던 빅스텝(한 번에 0.5% 포인트 금리 인상) 확률은 SVB, 시그니처은행 등 파산 이후 ‘제로’(0)가 됐다. 은행 시스템 위기가 한창일 땐 금리동결 확률이 50%를 웃돌며 지배적인 관측으로 떠올랐지만, 현재는 38% 수준을 줄었다.
전문가들도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고 있다. 자산운용사 라자드의 피터 오재그 금융자문 부문 최고경영자(CEO)는 “금융 안정은 빠르고 강하게, 물가 안정은 점진적이고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며 “연준은 당분간 통화 정책 긴축을 멈추고 상황을 지켜본 뒤 나중에 다시 점진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 잔디 무디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금 상황에서 통화 정책이 긴축되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위험하다”며 “연준이 여기서 잠시 멈춘다고 인플레이션 싸움에서 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금융 시스템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밥 슈워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은행권의 문제는 분명 (연준의) 관심을 끌겠지만, 이는 시스템적인 문제가 아니다”며 “연준이 대출을 통해 억제할 수 있는 유동성 문제”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연준의 급속한 금리 인상과 국채 수익률 하락 영향으로 악화한 은행 문제가 경제 전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며 “연준이 더 긴축할 수 있는 능력은 제한됐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