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를 국빈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첫 일정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 내년 대선 당선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도 시 주석의 3연임을 축하하면서 “중국 제도와 통치 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공식 회담에 앞서 이날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4시간 30분가량 비공개로 회동을 갖고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와 양국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21일 중국 외교부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전날 푸틴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내년 러시아 대선을 언급하며 “당신의 강력한 영도 하에 러시아의 발전과 부흥은 빠른 진전을 이뤘다”며 “나는 러시아 국민들이 반드시 당신에게 확고한 지지를 보낼 것으로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정상들이 사석에서 할 법한 덕담을 외교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때문에 이번 발언에는 미·중 경쟁 국면에서 푸틴 대통령을 전략적 협력 파트너로 여기는 시 주석의 속내가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 직전 국제형사재판소(ICC)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며 그를 전범으로 낙인찍었지만 시 주석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으로선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는 와중에 푸틴 대통령이 실각하고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대통령에 취임해 8년간 재임했다. 대통령 3연임을 금지한 헌법 때문에 측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직을 넘긴 뒤에도 총리로 있으면서 실질적인 1인자로 군림했다. 그는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한 개정 헌법이 적용된 2012년, 2018년 대선에서 승리했고 2020년 연임 제한을 철폐해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시 주석도 재임 중이던 2018년 국가주석 연임 제한을 없애 올해 세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을 ‘친애하는 친구’라고 부르며 지난 10년간 중국이 모든 분야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성과를 이뤘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어 “시 주석의 지도 아래 중국은 계속 발전하고 번영할 것이며 이미 정해진 목표를 순조롭게 달성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중국이 지난달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주년을 맞아 발표한 정치적 해결에 관한 입장을 진지하게 검토했으며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환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회동은 미국에 맞서 세계질서를 수호하겠다고 나선 두 정상이 친밀함을 과시하는 자리였다.
미국은 둘의 관계를 ‘정략결혼’에 빗대 비판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을 잠재적인 동맹으로 보고, 푸틴 대통령은 전쟁이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은 상황에서 시 주석을 일종의 생명줄로 본다”며 “애정이라기보다는 정략결혼”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영토에 러시아군을 남겨두는 휴전은 러시아의 불법 정복을 재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중국을 집단학살 국가로 평가한 ‘2022 국가별 인권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ICC가 푸틴 대통령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뒤 시 주석이 러시아를 방문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잔혹 행위에 대한 러시아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중국은 규탄은커녕 러시아가 중대 범죄를 계속하도록 외교적 은닉을 제공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