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 핵 문제와 대만 통일, 우크라이나 전쟁 등 핵심 현안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공개 지지하며 미국과의 대립 노선을 분명히 했다. 다만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이 가장 원했을 전쟁 지원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고 러시아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실속은 중국이 챙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 이후 ‘신시대 포괄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심화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에서 러시아는 “대만을 중국 영토의 일부로 인정하고 어떤 형태의 대만 독립에도 반대하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어떤 국가나 집단이 군사적 정치적 우위를 도모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합리적 안보 이익을 해치는 것에 반대하며 유엔 안보리 승인을 받지 않은 일방적인 제재에 반대한다”는 문구도 포함됐다. 총 9개 항으로 구성된 공동성명에서 대만 문제는 두 번째로 언급됐고 우크라이나 문제는 마지막에 담겼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구체적인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시 주석의 모스크바 방문은 연극에 가까워 보였고 그나마도 러시아보다 중국에 더 이득이 되는 연극으로 보였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대러 무기 지원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러시아 세관 자료를 인용해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시작 이후 러시아에 1200만 달러(156억원) 이상의 드론을 수출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중·러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선 “미국은 북한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관심에 실제 행동으로 호응해 대화 재개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로써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한층 뚜렷해졌다.
중·러는 이날 전면적인 에너지 협력 파트너십 구축, 무역 규모 확대, 금융 협력 등의 내용을 담은 ‘2030년 중·러 경제협력 중점방향 발전계획에 관한 공동성명’도 채택했다.
시 주석은 러시아에 머문 2박3일 동안 초특급 환대를 받았다. 시 주석은 이날 크렘린궁에서 가장 큰 성 게오르기홀에서 개최된 공식 환영식 때 황금문을 지나 군악대의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했다. 각종 회담 때마다 지각하기로 유명한 푸틴 대통령이지만 이날은 먼저 나와 시 주석을 맞았다. 외신은 ‘황실의 웅장함으로 가득 찬 의전’이라고 표현했다.
국빈 만찬은 과거 차르(황제)의 연회장으로 쓰였던 크렘린궁 내 그라노비타야궁에서 진행됐다. 푸틴 대통령은 이곳에서 시 주석의 건강과 양국 관계 발전을 기원하며 중국어로 건배를 뜻하는 ‘간베이’를 외쳤다. 약 6시간의 공식 일정이 모두 끝나고 푸틴 대통령은 숙소로 돌아가는 시 주석을 자동차까지 직접 배웅하는 정성을 보였다.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해외 정상들이 주로 붉은광장 주변 고급 호텔에 묵는 것과 달리 시 주석은 북부 외곽의 중국인 소유 호텔에 묵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시 주석이 이동할 때마다 주요 도로가 통제돼 시내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다고 전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