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전면전을 본격 시작했다. 러시아는 그동안 초기 침공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병력을 재배치하고, 지휘 체계와 보급선 등을 보완해왔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에 이미 76개 대대 전술부대(BTG)를 투입한 것으로 미 군사당국은 파악했다. 돈바스 전투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 규모 군사 충돌이 될 가능성이 커 대규모 사상자 발생 우려도 높아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우리는 지금 러시아군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돈바스 전투를 시작했다고 확인할 수 있다. 러시아군의 전력 가운데 큰 부분이 이 전투에 투입됐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나 많은 러시아군이 몰아닥치더라도 우리는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드리 예르막 대통령 비서실장도 “돈바스 지역에서 전쟁의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올렉시 다닐로프 국가안보회의(NSC) 의장은 “이날 도네츠크, 루한스크, 하르키우 지역의 거의 모든 전선에서 러시아 점령군이 우리 방어선을 돌파하려고 시도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수도 키이우 등 북부에서 철수한 부대를 동·남부 지역에 재배치한 뒤, 교전 지역을 확대하고 있다. 미 국방부 당국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에 최근 며칠간 11개 대대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북부에서 철수한 또 다른 22개 대대 BTG도 조만간 동부와 남부에 재배치될 것으로 예측했다.
1 BTG에는 600~1000명의 병력이 배치된다. AP통신은 이를 근거로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 러시아 병력 5만∼6만명이 집결한 것으로 추정했다.
서방 정보당국은 러시아가 다음 달 9일 2차대전 전승기념일 우크라이나 군사작전 승리를 선포하기 위해 돈바스 전투에 화력을 쏟아부을 것으로 예상해 왔다. 다음 달 초까지 침공 성과를 낸 뒤 러시아가 마리우폴에서 열병식을 열 계획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러시아는 이를 위해 민간 용병대 와그너그룹과 체첸공화국 수비대까지 투입했다. 와그너그룹 소유주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위장복 차림으로 찍힌 사진도 등장했다.
군 고위 당국자는 “중포병 부대, 지휘통제 장치, 항공 지원부대를 움직이고 있다. 러시아군은 적절한 유지 능력이 없었던 북부에서의 좌절로부터 교훈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지휘명령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부대 간 유기적 결합이 떨어져 실패했던 초기 침공을 보완해 동부 공격을 진행 중이라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러시아는 부품이 부족해 정밀유도탄 등 여러 무기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리 및 재보급 능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러시아는 자국의 방위산업 생산을 얼마나 빠르게 늘릴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며 “제재가 그들의 능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도 우크라이나군을 대상으로 미국산 155mm 호위처 곡사포 사용법에 대한 훈련을 시작하는 등 전면전 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 당국자는 “우크라이나 교관에게 호위처 곡사포나 대포병레이더와 같은 무기 사용법을 가르치고 이들이 우크라이나군을 교육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최근 155㎜ 호위처 17대와 포탄 4만 발 등 8억 달러 규모 군사지원을 추가로 제공하기로 했다. 미 당국자는 새 군사지원과 관련 이미 4번의 패키지가 배달됐고, 조만간 나머지 장비도 우크라이나에 도착한다고 설명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민을 대상으로 테러를 벌이고 있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그는 이날 브리핑에서 “러시아는 단순히 침략을 가하는 것 이상을 시작했다. 테러 행위,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잔학하고 비열한 침략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비판했다.
CNN은 “국무부가 테러 지원국 지정 가능성을 포함해 러시아에 책임을 묻기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미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프라이스 대변인도 CNN 인터뷰에서 테러지원국 지정과 관련 “법을 자세히 검토하고 있다. 효과적이고 적절하다면 법에 따라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테러지원국 지정 과정은 신중한 검토 후 이뤄진다. 우린 권한이 있지만, 현재로선 관련 업데이트가 없고, 예측도 할 수 없다”며 “평가는 국무부가 검토해야 할 과정”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러시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 달라고 직접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은 북한, 쿠바, 이란, 시리아 4개국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