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우크라이나가 침공한 러시아군을 막아내는 데에만 도움을 주는 ‘방어 조력자’였다면 이젠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몰아내는 ‘공격과 섬멸 작전’의 지원자를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의 태도 변화는 하루 전인 24일(현지시간) 미국 국무·국방 장관이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하면서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면담을 가졌다.
오스틴 국방장관은 면담을 끝낸 뒤 “미국의 목표는 러시아가 더 이상 이웃국가를 침략하지 못할 정도로 약해지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블링컨 국무장관 역시 25일 폴란드로 돌아와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권보다 오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트위터에 “우크라이나가 성공을 쟁취할 때까지 우린 (끝까지) 지원할 것”이란 글을 올렸다.
두 미국 최고위급 인사의 언급은 우크라이나를 넘어 유럽을 향해 야욕을 드러낸 러시아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 메시지로 해석된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형 공격무기도 잇따라 공급하고 있다. 21일 발표한 8억 달러 규모의 무기 지원에는 155㎜ 곡사포 72문과 포탄 14만4000발, ‘피닉스고스트’ 드론 121기 등이 포함된다. 155㎜ 곡사포는 분당 3∼5발을 발사해 40㎞ 밖에 있는 표적을 타격한다. 우크라이나군 요구사항을 반영해 제작된 피닉스고스트는 표적을 스스로 찾아내 자폭하는 방식이다. 블링컨 국무장관과 오스틴 국방장관의 우크라이나 방문 직후 미국은 추가로 3억2200만 달러의 군사지원 차관 제공을 발표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중심국들은 서방제 무기,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등 우크라이나 인접국들은 구(舊)소련제 무기를 우크라이나군에 제공토록 독려하는 역할도 맡았다. 프랑스가 지난 22일 발표한 155㎜ 차륜식 자주포 ‘세자르’, 캐나다의 155㎜ 곡사포 M777과 탄약 지원도 이런 차원이다. 영국 또한 대공미사일 발사대를 장착한 스토머 장갑차 여러 대를 보내기로 했으며, 독일도 마르더 보병전투차 100대 제공 여부를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군사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 주도로 제공되는 탱크나 장갑차, 자살공격용 드론으로 인해 우크라이나군은 방어뿐 아니라 돈바스지역에서 러시아군을 퇴각시키는 데 엄청난 도움을 받게 됐다”면서 “이번 전쟁의 향방이 바뀔 수 있는 포인트”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미국이 적극적 ‘개입’ 행보를 보이자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하며 제3차 세계대전 위험이 상존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핵전쟁 위험을 인위적으로 부풀리려는 세력(서방)이 많아 안타깝다”며 “3차 세계대전의 위험이 실재한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은 우크라이나 주재 외교관도 키이우에 복귀시키기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공석인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에 브리지트 브링크 현 슬로바키아 대사를 지명했으며, 폴란드로 철수한 주우크라이나 대사관 인력 또한 이번 주중에 현지로 복귀시킬 방침이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