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성석(68) 충정교회 목사는 1989년 당시 서울 서대문구에 있던 충정교회를 방문해 첫 설교를 하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즐겁게 사역하던 무렵이었다. 충정교회에서 온 담임목사 청빙을 한 차례 거절했는데 수요일 저녁 예배에 한 번만 와서 설교해달라는 부탁마저 저버리지 못해 교회를 찾아갔다.
도착한 교회 예배당은 군데군데 비가 새는 천정에 선풍기만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두침침한 형광등 아래 낡아서 시커멓게 변한 장의자에는 노인 몇 사람이 힘없이 앉아있었다. 그러나 그 눈빛에는 자신들을 이끌어줄 목자를 기다리는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지난 28일 경기도 고양 교회에서 만난 옥 목사는 “처음에는 내가 이런 교회에 오면 얼마나 고생할까,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설교를 마친 후에는 이 성도들을 내가 책임져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의 목회 여정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오직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한 노력의 연속이었다. 경남 거제도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삼거리교회(현 더높은교회)에 출석했다. 작은 교회였던 터라 고등학생 때부터 교회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하곤 했다.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금융권에서 일하던 중 ‘인생을 돈만 세며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부산 작은아버지 집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75년 고신대에 입학한 뒤 신학교를 다니는 중에도 주말마다 고향 교회로 내려가 설교했다.
“통통배를 타고 거제도에 도착해 차도 없는 길을 걸어 교회에 갔죠. 주일 아침 예배, 교회학교 예배, 오후 예배, 저녁 예배까지 섬기고 월요일에 다시 부산에 올라왔습니다. 젊은 나이에 부모님은 물론 어린 시절부터 뵈어온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설교한다는 게 부담이 컸지만, 고향 교회를 위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77년부터는 부산 온천제일교회에서 사역했다. 유·초등부 중등부 대학부를 맡은 데다 여전도회 찬양대 지휘까지 하게 됐다. 그는 “아침부터 3개 부서 설교를 하고 저녁 예배 후 찬양대 연습까지 끝내야 주일 일정이 마무리됐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다 보면 내릴 곳을 지나 종점에서 눈을 뜰 정도로 피곤했지만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면서 “다윗이 삶의 현장에서 아버지의 양을 치며 최선을 다했듯이 나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나를 주목하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83년 총신대 신대원을 수석 졸업한 그는 86년부터 사랑의교회에서 사역했다. 당시 옥한흠 목사는 그에게 설교를 요약해 주보에 싣는 일을 맡겼다. 1부부터 3부까지 주일 예배에 다 참석해 손으로 설교를 적으면서 ‘좋은 설교는 성도들의 삶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그들에게 적용점을 줘야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후 칼(CAL) 세미나 책임자로서 제자훈련을 배우고 전파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런 중에 충정교회로부터 담임목사 청빙 요청을 받은 것이다.
“당시 충정교회는 성도 간의 분쟁으로 7년여 동안 법정 공방을 벌인 직후였습니다. 젊은이들은 떨어져 나갔고 지역 주민들이 ‘저 교회는 가지 말라’고 얘기할 정도였죠. 부임 후 제자훈련을 열심히 하면 금방 사랑의교회처럼 부흥할 줄 알았습니다. 10년 동안 성도들의 마음이 치유되고 변화되는 것을 목격했지만 교회가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성도 수가 늘지는 않아서 깊은 좌절과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교회는 고민 끝에 2000년 경기도 일산 신도시의 종교부지였던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교회를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성도 한 사람의 반대도 없었고 모든 중직자는 물론 80% 이상의 성도들이 함께 옮겼다. 그는 “나중에서야 그동안 제자훈련을 받았던 성도들이 교회 이전을 반대하는 성도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켰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서로 믿어주고 의지하는 가운데 교회가 새로운 곳에서 자리를 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성도들과 새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연합할 수 있게 애썼다. 새 성도들은 젊은 부부가 많았는데 다행히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신앙을 지켜온 기존 성도들을 존중해주고 먼저 섬겨줬다. 젊은 층이 늘어나면서 교회는 활기를 띠었고 자연스럽게 교회학교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증가했다. 또 북한과 가까워지면서 탈북민 80여개 가정을 섬기며 그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게 됐다. 교회는 ‘영성 회복’ ‘해외 선교’ ‘국내 전도’ ‘교회 웅비’ ‘훈련 성숙’ ‘이웃 나눔’ ‘다음세대 부흥’이라는 제2의 창립 비전을 목표로 지역사회에서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나 좌절을 맛보았을 때 주의 자녀를 고난 중에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본심을 믿으며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어려울 때마다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좋은 곳으로 이끄시리라는 확신이 있었고 그 믿음이 옳았습니다. 남은 목회도 하나님의 그 선하심에 의지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고양=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