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중 부상을 입은 LA 출신 한인 육군 참전용사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구금과 추방 위협에 직면하면서 올해(2025년) 초 한국으로 '자진 출국(Self-Deported)'한 사건이, 이번주 연방의회 청문회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 11일 목요일 열린 연방의회 청문회에서 크리스티 노엄(Kristi Noem) 국토안보부 장관이 출석해 올해 초 시작된 이민 단속 과정에서 LA를 포함해서 얼마나 많은 참전용사가 추방되었는지 집중 추궁을 받았다.
민주당의 세스 매거자이너 연방하원의원(로드 아일랜드)은 연방이민단속과 관련해 시민권자나 참전용사를 추방했는지 질문했고 크리스티 노엄 장관은 단속 과정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다고 언급했다.
그 순간, 세스 매거자이너 연방하원의원 의원실 보좌관이 크리스티 노엄 장관을 향해서 자신의 태블릿 PC를 들어 보였다.
그 태블릿 PC 화면에는 현재 한국에 머물고 있는 LA 한인 박세준(Sae Joon Park, 56) 씨가 연결돼 있었다.
'퍼플하트(전투 중 부상자에게 수여되는 훈장)' 수훈자인한인 박세준 씨는 줌(Zoom)으로 연결되서 장관 발언을 듣고 있었다.
세스 매거자이너 연방하원의원은 한인 박세준 씨가 미군으로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평생 하는 것보다 더 많은 희생을 치렀다며, 크리스티 노엄 장관에게 국무위원으로서의 재량권을 발휘해 박세준 씨의 사건을 재조사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크리스티 노엄 장관은 "반드시 살펴보겠다"고 약속했다.
LA Times는 청문회가 열렸던 그날(12월11일) 밤 서울에 머물고 있는 박세준 씨에게 연락을 해서 인터뷰를 했다.
박세준 씨는 크리스티 노엄 국토안보부 장관이 의회에서 다시 조사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지만, 청문회 장면을 보며 크게 소름(Goosebumps)이 돋았다고 언급했다.
박세준 씨는 정말 놀라웠고, 고향 친구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전화를 걸어왔다고 근황을 설명했다.
박세준 씨는 그저 모든 일에 정말 감사할 따름이라는 자신의 소감을 말했다.
친구들은 박세준 씨에게 의회 청문회가 열렸던 11일 목요일 밤 ABC 방송의 인기 토크쇼 '지미 키멜 라이브!(Jimmy Kimmel Live!)'에 박세준 씨의 추방 사연이 소개됐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했다.
진행자 지미 키멜은 그날 쇼의 오프닝 독백에서 박세준 씨의 청문회 영상을 보여주며 이렇게 질문했다.
이 상황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고는 농담 빼고 진지하게 말해서, 퍼플하트를 받은 참전용사를 추방한 건 공화당원들이 참전용사를 끔찍이 아낀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세준 씨는 7살 때 합법적으로 미국으로 이민 와 LA 한인타운과 San Fernando Valley 등에서 성장을 했다.
1988년 Sherman Oaks에 위치해 있는 노틀댐 고등학교(Notre Dame High School)를 졸업한 뒤 美 육군에 입대해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당시 영주권자였던 박세준 씨는 입대 다음 해인 1989년 미국이 파나마의 실권자였던 마누엘 노리에가 장군을 축출하기 위해 파나마를 침공하는 작전을 감행했을 때 바로 그 작전에 투입됐다.
박세준 씨는 파나마 침공 작전 중 두 차례나 총상을 입었지만, 노리에가 축출 작전이 성공하면서 그 이후 명예 제대했다.
그렇지만 박세준 씨에게 전쟁으로 인한 상처는 깊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던 박세준 씨는 불법 약물로 정신적 고통을 달래다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됐고,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에서 도주해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박세준 씨는 하와이에서 재활에 성공해서 약물을 끊고 두 자녀를 키우며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올해(2025년) 초, 금주와 고용 상태를 확인받기 위한 연방 당국과의 연례 면담에서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고 말았다.
연방 당국은 즉시 구금돼 추방되거나, 아니면 3주 동안 발찌를 차고 신변 정리를 한 뒤 10년 동안 미국을 떠나 있으라는 선택지를 강요받은 것이다.
트리시아 맥러플린 국토안보부 차관보는 올초 박세준 씨가 "광범위한 범죄 전력"이 있기 때문에, 최종 추방 명령을 받은 상태에서 자진 출국 옵션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결국 박세준 씨는 자발적으로 한국으로 출국하는 길을 택했다.
어릴 때 떠나온 이후 살아본 적 없는 한국에서의 생활은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이제 박세준 씨는 심리 상태와 한국어 실력이 많이 나아졌다고 전했다.
박세준 씨는 한국 생활이 쉽지는 않았다며 LA 자신의 집이 당연히 아직도 미치도록 그립다고 말했다.
박세준 씨는 자신이 원래 긍정적 마인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면서, 언젠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지난 6월 미국을 떠날 때 박세준 씨의 가장 큰 걱정은 치매를 앓고 있는 86세 노모의 건강이었다.
자신이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실까 봐 두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어머니의 인지 능력 저하가 지금 박세준 씨에게는 묘한 축복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어머니는 자신이 한국에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며 통화할 때마다 어디있냐고 물어본다는 것이다.
박세준 씨는 LA Times와 인터뷰에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어머니가 자신의 걱정을 항상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는 것으로 하지만 동시에, 어머니가 이 힘든 시기를 보내는 동안 곁에 있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소망도 나타냈다.
박세준 씨의 바램이 이뤄질 수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