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미국에서 지난해 1월 6일 발생한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 진상조사위의 첫 공개 청문회가 열린다. 지난 1년간의 조사 결과를 대중에게 공식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청문회는 대선사기 주장으로 미국을 완전히 갈라놓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정면 겨냥하고 있다.
청문회 결과는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국 중간선거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진영에 따른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어서 분열만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조사위 부위원장을 맡은 리즈 체니 공화당 하원의원은 5일(현지시간) CBS와 인터뷰에서 지난해 1월 6일 의사당 난입 사건은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한 지속적인 위협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해당 사건이 정부 전복을 위한 음모의 결과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증거를 보면) 그것은 매우 광범위했고, 매우 잘 조직됐다”며 “매우 소름 끼친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측근들은 대선 결과에 불복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짰고, 의사당 난입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의미다. 실제 조사위는 트럼프 전 대통령 측근과 가족들 사이의 문자 메시지를 통해 이들이 대선 패배를 거부하고 집권을 지속하는 방법을 논의한 사실 등을 확인했다.
민주당은 이번 청문회가 리처드 닉슨 대통령 퇴진을 끌어낸 ‘워터게이트 사건’ 청문회와 필적할만하다고 보고 있다. 오는 9일 시작되는 청문회는 황금시간대인 오후 8시(동부시간 기준) TV로 전국에 생중계된다. 위원회는 그동안 1000명이 넘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고, 12만5000건 이상의 기록을 검토해 왔다. 관련자들의 증언, 트럼프 전 대통령 측근과 가족들의 육성이 담긴 인터뷰 등이 모두 공개된다. 폴리티코는 “이번 주는 워싱턴의 민주주의 주간”이라고 표현했다.
데이비드 시실리니 하원의원은 “충격적인 새로운 증거가 발표될 것”이라며 “트럼프는 선거에서 졌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결과를 뒤집을) 계획을 했다. 국민은 (청문회에서) 이 계획과 실행에 대해 알 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기자인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은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을 통해 “우리는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익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대통령이 없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뒤 트럼프가 나타났다”며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선동적인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트럼프와 그의 충성파들은 2020년 선거가 조작됐다는 거짓 주장으로 미국을 공격하는 전략을 고안했다”며 “닉슨의 상상을 초월하는 속임수”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청문회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체니 의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시 있었던 일에 대해 어떤 반성도 표명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그는 (당시보다) 더 극단적인 말을 하고 있다”며 “우리가 방어하지 않으면 민주주의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주변에는 (그를 향한) 절대적인 숭배 세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미 공화당 의원 상당수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충성 맹세를 한 상황이어서 청문회가 분위기를 뒤집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다.
CNN은 “트럼프 팀은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지지 그룹인) MAGA를 동원하려 한다”며 “충성파들이 조사위를 공격하기를 원한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조 로프그렌 하원의원은 “워터게이트 사건 때와는 미디어 환경이 다르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시청자들이 어떤 미디어의 (필터) 버블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다른 인상을 받게 될 것”이라며 “분열된 정치와 미디어 환경을 고려하면 워터게이트 사건에 필적할만한 충격을 주는 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영이 이미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확증 편향된 정보에 갇혀버리는 필터 버블로 인해 갈등만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