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의 ‘기독교’ 관련 결정문 가운데 기독 사립대의 고용 차별에 대한 시정 권고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해당 기독사학들 상당수는 인권위의 시정 권고를 거부하고 있다. 권고 수용 여부가 사학의 정체성 훼손과 직결되는 문제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사학의 경우 인권위 권고에 이어 최근 불거진 차별금지법 입법화까지 사학의 건학 이념을 거스르는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인권위 권고에 대한 실효성을 확보하면서도 사학의 설립 취지를 함께 살릴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 3차례에 걸쳐 기독교 관련 인권위 결정례를 들여다본다.
국민일보는 지난 1일부터 사흘간 기독교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에 제기된 진정 사건의 결정례를 전수 분석했다. 인권위 설립 초기인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집계된 결정례는 총 33건으로, 인권위 홈페이지에서 ‘기독교’ ‘교회’ ‘목사’ ‘장로’ 등의 키워드로 검색했다.
인권위 결정례는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학교, 구금·보호시설에서 인권 침해나 차별 행위에 대한 진정 제기에 따른 결정문이다. 인권위는 각 사안에 대해 시정·개정 등을 권고하거나 기각할 수 있다.
결정문 분석 결과, 유형별로는 노동 분야가 18건(55%)으로 가장 많았다. 대부분 기독사학의 직원 채용 과정에서 제기된 진정 건에 대해 차별 행위가 있었다는 지적이었다.
기독사학의 고용차별은 어떤 내용일까. 인권위는 2016년 A대학에 대해 ‘종교차별 방지 및 교원인사규정·정관 개정’을 권고했다. 이유는 이 대학이 교원 채용공고에서 지원 자격을 ‘기독교인’으로 제한하고, 지원서에 세례 유무, 세례 연도, 출석교회를 기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교직원 채용 시, 비기독교인을 모든 경우에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는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고 적시했다. 이 같은 유형의 진정 사건 제기와 인권위 결정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일부 기독사학은 인권위의 결정을 수용했다. 하지만 주요 사학들은 인권위 권고를 따르지 않기로 했다. 총신대와 성결대, 한남대 등이 대표적이다. 2018년 말 인권위가 인권위 결정을 따르지 않는 이들 대학의 이름을 공개했다.
7일 국민일보 조사 결과 총신대를 비롯해 성결대 숭실대 한남대 서울한영대 등은 직원 채용 시 기독교인 자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총신대는 ‘신규 임용 교원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교단에 소속된 교인’으로 명시돼 있다. 성결대의 경우 올해 1학기 교수 채용을 하면서 지원 자격에 ‘건전한 교단에 소속된 교회의 세례교인’을 명시했다.
방명숙 성결대 법인사무국장은 “성결대 설립 목적은 기독교적 인재를 양성하고 기독교적 일반 사회 지도자를 길러내는 것”이라며 “기독교 사학에서 기독교인 직원을 채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엄연한 역차별”이라고 말했다.
서울한영대는 전임 교원을 모집하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한영) 윤리강령을 준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교회직분 증명서’를 제출토록 했다. 기독교인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기독교인 자격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을 중심으로 논의 중인 차별금지법 제정안에 대한 기독사학들의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인권위 시정 권고를 법으로 강제해 종교 사학을 포기하라는 것’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 사무총장인 함승수 숭실대 교수는 “차별금지법 제정안이 통과되면 기독교 직원 채용 조항 삭제뿐 아니라 기독교 사학의 건학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면서 “인권위의 권고가 국회로 넘어가 법령으로 제정되지 않도록 요청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인권위 권고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박재찬 기자 박이삭 서은정 유경진 인턴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