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이 휘발유 가격 상승으로 최악의 리더십 위기에 직면했다. 휘발유 가격 상승은 식료품 등 필수 소비재 가격을 덩달아 인상하며 미국 인플레이션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가격 오름세가 워낙 가팔라 저소득층이 받는 충격이 훨씬 컸다.
전미자동차협회는 11일(현지시간) 미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이 갤런당 5.004 달러로 1년 전(3.077 달러)보다 62.6% 증가했다고 밝혔다. 평균 휘발유 가격이 5달러를 넘는 지역은 캘리포니아(6.43 달러), 네바다(5.64 달러), 알래스카(5.56 달러), 일리노이(5.56 달러), 워싱턴(5.54 달러) 등 22개 지역에 달한다. 미국 주의 거의 절반 가까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지난달 카드 사용 내용을 분석한 결과 가구당 총 카드 지출에서 휘발유 등 유류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7.8%로 지난 2월(6.4%)보다 1.4% 포인트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휘발유 가격 상승에 따른 재정 부담이 커진 것이다.
저소득층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연간 가계 소득이 5만 달러 미만인 가구의 휘발유 가격 지출 비용은 올 초 7%에서 9.5%로 급증했다. 반면 연 소득 12만5000달러 수준의 가구에서는 5%에서 6%로 증가했다. 유류비 부담이 크게 늘면서 가구나 전자제품 구매, 주택 개조 등의 내구재 지출은 11% 감소했다.
BofA는 “저소득 가구는 높은 휘발유 가격의 영향을 특히 더 체감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악시오스도 “휘발유 가격 상승은 모든 미국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저소득 가정은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급등하는 연료 가격은 바이든 행정부가 다루기 힘든 정치적 도전을 가중하고 있다”며 “연료 가격 급등은 모든 종류의 비즈니스에 더 높은 비용을 안겨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40여년 만의 최고치인 8.6%를 기록했는데, 이중 휘발유 가격 상승이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달한다.
WP 여론조사에서 연소득 5만 달러 미만 운전자 61%는 “가격이 비싸 연료 탱크를 다 채우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AAA는 휘발유 부족으로 긴급 호출을 받은 사례가 5만787건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32% 급증했다고 밝혔다.
휘발유 가격은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JP모건 체이스는 평균 휘발유 가격이 8월까지 갤런당 6.20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보험업체 제리는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6달러까지 오르면 연 소득 4만 달러 미만 가구는 소득의 28%를 연료비로 지출해야 한다고 예측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은 경기침체의 전조로 여겨진다. 가격 급등의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돼 구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BofA도 “휘발유 가격을 포함한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은 소비자 구매력을 잠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자산운용사 GMO 공동 설립자인 제러미 그랜섬은 “역사적으로 지금 서구가 직면한 것과 같은 유가 급등은 항상 경기침체 불러왔다”고 말했다.
물가인상은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연방의원 등 민주당 관계자 50명가량을 인터뷰한 결과 상당수가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의구심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2024년 대선에서 불출마해야 한다는 기류가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셸리아 허긴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위원은 “민주당은 2024년 대선을 위해 신선하고 대담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그게 바이든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스티브 시메오니디스도 “미국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과 아주 거리가 먼 이야기”라며 “바이든 대통령은 중간선거 직후에 2024년 재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WP는 “가스 가격의 끊임없는 상승 행진은 올가을 중간 선거를 앞두고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주요 국내 정치적 위협 중 하나로 부상했다”며 “백악관은 추세를 뒤집을 확실한 해결책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