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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은퇴한 원로목사님이 ‘행복마트’ 연 까닭은…


“아이고, 이렇게 많이 챙겨주시다니…. 고맙네요.” 지난 10일 오후 인천 미추홀구 ‘행복마트’에서 생필품을 장바구니 가득 담은 한 손님은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는 “다음 주에는 목사님이 계신다는 교회 수요예배에 나가려고 한다”며 이건영(69) 인천제2교회 원로목사에게 인사를 청했다. 손님이 “목사님, 이래 젊구만요”라고 덕담하자 이 목사의 나이를 아는 봉사자들은 까르르 웃었다.

이 목사와 김영주(69) 사모는 은퇴한 지 석 달 만인 지난 3월 이 가게를 열었다. 소득이 높지 않은 지역 주민 70여명에게 생필품을 제공하는 곳이다. 말하자면 회원제 마트다. 1987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35년간 인천제2교회에서 사역한 이 목사가 왜 이런 가게를 낸 걸까.

이 목사는 “코로나 시기 우리 교회는 무료급식 사역을 중단해야 했고 대신에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나눠주는 나눔마트를 열었는데 보람 있었다. 은퇴하면 그런 마트를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가 시무한 인천제2교회는 이웃을 섬기고 나누는 일에 열정을 쏟았다. 독거노인 노숙인 장애인 외국인근로자 미혼모 등을 위해 21가지 구제 사역을 했다.

행복마트가 있는 용현동은 가파른 경사를 따라 오래된 연립주택이 많은 곳이다. 이 목사는 행정복지센터를 찾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명단을 받고 80여㎡ 작은 상가에 행복마트를 열었다. 마트는 매주 금요일 1시부터 6시까지 ‘등록 고객’에게 쌀 휴지 식용유 라면 등 70개 품목을 지급한다. 고객은 원하는 물건을 6개까지 담을 수 있다. 소매가로 환산하면 5만원가량이다.

이 목사는 매월 상가 월세와 생필품을 사는 데 드는 비용 300여만원을 자비로 마련하고 있다. 김 사모는 은퇴 후 사역이 고되지 않으냐는 질문에 “이 목사님이 그러더라. 나는 평생 하나님 사랑받고 성도들 사랑받으며 살아왔다. 은퇴 뒤에도 이 사랑을 베풀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 이전이나 이후나 이런 사역을 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했다.

문을 연 지 3개월이 된 행복마트는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분위기다. 그는 이제 다른 소망을 품고 있다. “내가 목사인 걸 아는 고객은 소수다. 영혼 구원이 내겐 가장 큰 소명이다. 9월쯤 주일에 원하시는 분을 행복마트에 초대해 예배드리고 싶다. 그럼 행복마트교회가 될 것”이라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은퇴할 후배 목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내 그릇에 넘치지 않는 작은 사역을 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감사하다”고 했다. 이어 “나처럼 작은 가게를 할 수 있는 은퇴 목사님이 많지 않다. 대부분 어렵다. 혹시 행복마트가 그분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인천=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