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기 판결 이후 낙태 수술 대신 임신중절 알약에 대한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낙태를 선택할 권리를 비롯한 여성의 재생산권 공방의 불씨가 임신중절 알약으로 옮겨붙는 모습이다.
미국 대법원이 낙태권을 제한한 뒤 수술 대신 약으로 임신을 중절하려는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24일 대법원의 낙태권 폐기 결정이 내려진 지 몇 시간 만에 임신중절 알약 처방을 알선해주는 비영리단체 ‘저스트 더 필’에 예약 문의가 100건 가까이 접수됐다. 이는 평소 문의의 약 4배에 달하는 건수다. 특히 대법원 판결 이후 곧바로 낙태를 금지한 텍사스주 등 거주자의 문의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NYT에 따르면 미국의 낙태 절반 이상이 이미 임신중절 알약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의료기관을 찾아가 낙태 수술을 받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신체 손상도 비교적 덜하기 때문이다. 이에 NYT는 임신중절 알약 처방이 낙태권 폐지의 새로운 법적 분쟁의 쟁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신중절 알약을 통한 낙태인 ‘의약적 낙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임신 10주 이내에 한해 허용하고 있다. 의약적 낙태는 24~48시간 간격으로 두 종류의 약을 먹어 태아의 성장을 멈추고, 자궁을 수축시켜 태아를 몸 밖으로 빼내는 방식이다.
미국에선 의약적 낙태 허용도 각 주마다 달라 의약적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은 이를 허용하는 주에서 의사를 만나 약을 수령해 낙태를 한다. 직접 임신중절 알약을 처방하는 병원에 가지 않고도 가능하다. 전화, 영상 또는 온라인 서류 등의 방식으로 상담한 뒤 우편으로 약을 받을 수 있다.
NYT는 낙태를 법적으로 허가하지 않는 주 정부가 의약적 낙태를 단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편으로 약을 주고받거나, 약을 처방해주는 인근 주로 직접 이동해 약을 처방받는 것까지 막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50개주 가운데 절반 정도가 낙태 수술을 금지하고 있다. 민주당이 우세한 주에선 낙태 접근권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낙태 수술을 둘러싼 미국 지역 내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의약적 낙태는 또 다른 낙태권 분쟁의 격전지가 될 전망이다.
이미 의약적 낙태를 놓고 미국 내에서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낙태권에 강경하게 반대해온 텍사스주는 우편으로 임신중절 알약을 주고받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최근 제정했다. 반면 일부 시민단체와 몇몇 주 정부는 임신 중절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임신중절 알약 처방이 합법화된 주에서 약을 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단체 ‘저스트 더 필’은 2020년 10월 이후 콜로라도, 미네소타, 몬태나, 와이오밍 등 낙태가 금지된 주에 사는 2500여명의 여성들에게 의사와 상담을 제공하고, 우편으로 임신중절 알약을 수령할 수 있도록 도와왔다. 이 단체의 줄리 아마온 의약국장은 며칠 내로 콜로라도주 경계 지역에 ‘이동진료단’ 1호점을 개설해 임신 중절을 원하는 여성들이 상담과 약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민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