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을 원하는 미국인 84명이 아직 현지에 남겨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철군이 완료된 지난해 8월 이후 최근까지 800명 이상의 미국인이 추가 구조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군이 아프간을 떠난 지 1년이 됐지만, 자국민 구조작업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공화당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철군의 증거라며 비판했고, 백악관은 “거짓으로 가득 찬 보고서”라며 반박했다.
미국 하원 외교위 소속 공화당 의원들은 14일(현지시간) 아프간 철군 과정에 대해 자체 조사한 보고서를 공개하며 “시민들을 어떻게 대피시킬지에 대한 핵심 결정은 카불이 함락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야 내려졌다. 사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피가 절정에 다다랐던 지난해 8월 말 카불 국제공항에는 36명의 영사관 직원만이 일하고 있었다. 탈출 요청자가 대규모로 몰려들었지만, 인원이 부족해 서류 확인 절차 등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공화당의 주장이다.
워싱턴타임스는 보고서를 인용해 “국무부는 지난해 8월 31일 이후 800명 이상의 미국인을 구조했는데, 여기에는 민간단체에 의해 구조된 사람 수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해 9월 의회에서 “아프간에 남겨진 미국인이 100~200명가량이고, 탈출을 원하는 건 그보다 적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폴리티코는 “이전에 알려진 것보다 수백 명 더 많은 미국인이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었다는 의미”라며 “탈출을 원하는 미국인 수를 (애초) 과소 계산했거나, 탈출하려는 미국인 수가 (점차) 증가했음을 나타낸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800명 이상의 미국 시민이 남겨졌다는 것”이라며 “행정부가 철군 후 아프간에 남겨졌다고 주장한 수치보다 몇 배 많다”고 설명했다.
미국인 구조 작업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공화당 하원 외교위 소속의 한 보좌관은 “미국 정부는 계속해서 대피를 촉진해 왔고, 지난달 말 현재 탈출을 원하는 84명의 미국 시민이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또 바이든 행정부가 미군 훈련을 받은 아프간 보안군 대피 결정을 내리지 않아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 보안군은 미군 군사 자산이나 작전에 대한 민감 정보를 알고 있어서 러시아나 중국, 이란 등이 이를 이용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실제 아프간 보안군 약 3000명이 군사 장비와 차량을 가지고 이란으로 넘어갔다고 지적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이들은 미군과 긴밀히 협력해 왔다”며 “만약 이란의 정보자산으로 포섭될 경우 미국 국가 안보의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폴리티코는 “아프간 보안군이 테러 단체에 합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외교위 관계자에 따르면 보안군 전사 중 일부가 이슬람국가(IS)에 가담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지적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이들 보안군은 절망적인 상황에 있어서 잠재적인 우려가 크다”며 “이들은 탈레반 당국에 쫓기고 있고, 경제 상황도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굴욕적 철군은 준비 부족 때문이라는 게 공화당 주장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무부는 지난해 8월 14일 진행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에서 아프간에서 탈출한 피난민이 임시 체류할 허브를 제3국에 조성하기로 하는 임무를 받았다. 그러나 이튿날 카불이 함락됐고, 케네스 메켄지 전 미 중부사령관은 카타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대피 협정을 진행해야 했다.
보고서는 또 미군이 지난해 4월 바이든 대통령이 무조건적인 아프간 철군 방침을 발표하기 4일 전에야 민간인 철수 작전에 대한 대비 지시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대피 임무를 맡았던 패럴 설리번 준장은 군 조사에서 “지상에서 우리가 보는 상황과 국무부에서 보는 긴박성에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는데, 보고서는 이를 언급하며 “긴박성 결여로 군 지도자들이 좌절했다”고 언급했다.
에이드리엔 왓슨 백악관 NSC 대변인은 별도의 성명을 내고 “보고서는 부정확한 묘사와 유리한 정보 편집, 잘못된 주장으로 가득 차 있다”고 반박했다. 왓슨 대변인은 “미군 철수 결정은 애초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른바 ‘도하 협정’을 통해 내린 것”이라며 “20년간 교착된 전쟁이 악화하지 않도록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미군을 보내야 했는데,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거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왓슨 대변인은 철군 결정의 정당성을 주로 해명했고, 미국인 구조 인원 등 내용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