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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성난 지옥” 잭슨홀 가득 메운 ‘매파’


전 세계 이목이 쏠린 사흘간의 잭슨홀 미팅이 27일(현지시간) 끝났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비롯한 주요 연사들의 발언 요지는 “지금은 금리 인상을 멈출 때가 아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연사들은 경기 둔화의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금리 인상을 지속해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놨다.


“내 발언은 짧고, 초점은 좁고, 메시지는 더 직접적일 것이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목표는 인플레이션을 목표치인 2%로 낮추는 것이다.”

파월 의장은 미국 와이오밍주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에서 열린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 연설에서 금리 인상을 통한 물가 대응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 경기침체 우려가 연준의 물가 대응 의지를 무디게 할 수도 있다는 시장의 기대를 꺾으려는 듯 그의 표현은 직설적이고 명료했다.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중앙은행 의지를 의심하지 말라”는 경고를 시장에 보내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8분간의 연설은 금융시장을 폭락시키며 하루 만에 수십조원을 증발시켰다. 블룸버그는 그의 발언이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의 재산 780억 달러를 집어삼켰다고 설명했다. 금리 인상이나 그에 따른 경기 침체 여파에 민감한 대기업들 주가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재산은 68억 달러가 감소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의 재산도 55억 달러가 줄어들었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재산도 각각 27억 달러, 22억 달러 감소했다.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재산은 1000억 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파월 의장 발언 이후 암호화폐 시장도 흔들렸다. 대장 격인 비트코인은 지난달 14일 이후 처음으로 2만 달러가 붕괴했다.


파월 의장만 매파적인 게 아니었다. 회의에 참석한 주요 연사들은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중앙은행이 강경책을 지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이사벨 슈나벨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는 “전 세계 중앙은행은 대중의 신뢰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 경제가 침체에 빠지더라도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강력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수아 발레로이 드 갈라우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도 “ECB가 나중에 ‘불필요하게 잔인한’ 금리 인상을 하지 않도록 인플레이션에 대처하는 (분명한) 결의를 보여야 한다”며 지속적인 금리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타 고피너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는 “팬데믹과 전쟁은 공급 충격 변동성을 증가시켰다. 중앙은행이 디앵커링(기대인플레이션이 고정된 수준에서 벗어나는 현상) 위험을 피하려면 오늘 단호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위험은 신흥 시장에 가장 심각하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이 높게 유지되는 한 긴축 정책을 계속할 것임을 나타내야 한다”며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더 지속되는 것으로 판명되면 경제가 급격히 냉각되고 실업이 증가하더라도 더욱 공격적으로 긴축을 하겠다는 결의를 강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는 “우리는 인플레이션이 하락세에 있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며 “내년 초까지 기준금리를 4% 이상으로 높인 뒤 연말까지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준 금리가 내년에 다시 하락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내년 경기 둔화가 시작되면 연준이 금리를 조기에 낮출 수도 있다는 시장 기대를 무너뜨리는 발언이다. 메스터 총재는 다만 다음 달 3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0.75% 포인트 금리 인상)에 나설지에 대해서는 “데이터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는 지금의 인플레이션 환경을 ‘성난 지옥’이라고 묘사하며 “이런 지옥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고 언급했고,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도 “연준은 오랫동안 더 높은 금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만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건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프란체스코 비앙키 존스홉킨스대 교수와 리어나도 멜로시 시카고 연은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발표에서 “최근 물가상승률 증가분의 절반가량이 재정적 원인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 그에 따른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 상실이 지금의 인플레이션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의) 적절한 재정 조정에 대한 기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재정 불균형 악화가 더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져오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며 정부가 지출과 부채를 줄이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제이슨 퍼먼 하버드 경제학과 교수는 다만 “2% 인플레이션은 너무 낮은 목표라고 생각한다”며 “인플레이션이 3%로 회복되면 연준 등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 목표에 대한 승리를 선언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2%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경기 둔화가 너무 심화할 수 있고, 인플레이션이 3% 수준에서 고정된다면 시장이 이를 안정적인 물가상승률로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