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리즈(엘리자베스의 애칭) 트러스(47) 외무장관이 5일(현지시간) 영국을 이끌 총리직에 올랐다. 트러스 차기 총리는 6일 스코틀랜드 벨모럴성에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을 알현하고 임명장을 받으면 마거릿 대처, 테레사 메이에 이은 영국 역사상 세 번째 여성 총리로 취임하게 된다. 그가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 등 산적한 현안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트러스 총리는 이날 새 총리를 뽑는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57.4%를 득표해 42.6%를 얻은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을 눌렀다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은 집권당 대표가 총리를 겸한다.
약 16만명의 영국 보수당원은 지난달 1일부터 한 달간 우편과 인터넷을 통해 투표를 진행했다. 이번 경선에서는 ‘강경 보수’ 트러스 장관과 ‘인도계 엘리트’ 수낙 전 장관이 맞붙었다.
트러스 총리는 수락 연설에서 “담대한 감세정책을 추진해 영국 경제를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에너지 가격 급등 문제에 대해선 “석유 수급을 충분히 확보해 가격을 안정시킬 것”이라고 언급했다. 2024년 총선에서 노동당에 승리하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트러스는 경선 과정에서 감세를 통한 경기 부양, 러시아·중국에 대한 강경책 고수, 브렉시트 적극 옹호 등을 앞세워 보수파 당원들의 지지를 얻었다. 앞서 존슨 총리가 파티게이트 등 각종 추문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 그를 옹호해 당원들의 마음을 얻었다. 대처 전 총리와 같은 ‘친시장’ 이미지를 구축한 것도 우세를 점한 배경이다.
경쟁자인 수낙 전 장관은 정책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배신자’ 프레임을 떨쳐내지 못했다. 존슨 총리가 사퇴 압박을 받았을 때 수낙 전 장관은 트러스 장관과 달리 존슨 총리 퇴출에 앞장섰다. 그를 발탁하고 중량급 정치인으로 키운 인물이 존슨 총리다. 수낙 전 장관은 집권당 하원의원을 상대로 한 5차례 경선에서 줄곧 1위를 차지했지만, 당원 선거가 시작되자마자 힘을 잃었다.
트러스의 앞길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현재 최악의 경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내년 말까지 영국의 경기 침체를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치솟는 에너지 비용도 문제다.
트러스는 분배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춰 영국을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경선 과정에서 국민보험료 인상에 대해 “소득이 많다고 보험료를 더 내는 것은 부당하다”며 “모든 경제 정책을 ‘재분배의 렌즈’로 보는 건 잘못”이라고 언급했다.
대외적으로는 철저한 실리외교를 바탕으로 영국의 영향력을 높이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유럽과의 관계에서 독자노선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유럽연합(EU)의 중심 국가인 프랑스가 주도하는 유럽정치공동체 참여에도 부정적이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