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 ‘OPEC 플러스’(OPEC+)가 의장국 사우디아라비아에 원유 가격 안정을 위한 시장 개입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침체로 인한 급격한 가격 변동성을 적극적으로 막겠다는 의도다.
일각에서는 그러나 산유국들이 미국 등 주요 7개국(G7)이 추진한 ‘러시아산 석유 가격상한제’ 합의에 반발해 시장 개입 여지를 확대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로이터 통신은 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OPEC+ 회원국들은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 장관이 필요하면 언제든 회의를 소집해 원유시장 안정을 위해 개입하는 것을 지지했다”고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소식통은 “OPEC+는 다음 회의를 오는 10월 5일로 예정했지만, 그전에라도 언제든지 회의를 열어 생산량을 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OPEC+는 전날 월례회의 후 다음 달 하루 원유 생산량을 9월보다 10만 배럴 줄이기로 합의했다. 미국의 증산 요구에 따라 지난달 회의에서 늘리기로 한 양을 한 달 만에 되돌린 것이다.
OPEC+는 시장 변동성에 따른 가격 안정을 이유로 들었다. 금리인상과 중국의 코로나 재봉쇄 조치 등으로 경기침체 우려가 심각하고, 미국과 이란의 핵 합의 복원 전망에 따라 이란산 원유가 풀릴 가능성이 제기돼 급격한 가격 하락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OPEC+는 하반기쯤 소비 위축으로 하루 90만 배럴의 초과 공급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그러나 산유국들이 미국 등 서방의 국제유가 통제 시도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사용해 유럽을 벌주고 있다. 석유는 아직 무기화되지 않았지만, 러시아산 석유 가격상한제는 이런 위험을 높인다”며 “카르텔의 가격 결정권을 (서방이) 위협하면 보복당할 수 있다는 경고의 신호”라고 보도했다. G7의 석유 가격상한제가 성공적으로 이행되면 국제유가에 대한 일종의 구매자 연합이 형성되는 셈인데, 이는 OPEC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OPEC+ 합의로 원유 시장에서 사우디 입김이 커진 것도 불안 요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가를 잡기 위해 지난 7월 자존심을 누르고 사우디를 방문했는데, 이번에 사우디 주도로 감산 결정이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 순방 때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 회복도 이뤄내지 못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이 OPEC+ 발표 직후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전 세계 소비자를 위해 에너지 가격을 낮추려면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WSJ은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를 순방한 지 몇 주 만에 나온 감산 결정은 정치적 시그널”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이번 감산은 사우디가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OPEC+는 산유량을 늘리도록 한 바이든 행정부의 간청을 얼마든지 무시할 의향이 있음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