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해온 일이 이제 성과를 내고 있다. 전쟁 초기 러시아산 천연가스는 전체 수입의 40%에 달했지만 현재는 9%까지 낮아졌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EU 집행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산 석유에 이어 천연가스에 대해서도 가격상한제 도입을 제안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극악무도한 전쟁을 벌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러시아의 수익을 끊어야 한다”면서 “마지막 수단으로 9일 EU 에너지장관회의에서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가격상한제를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회견 소식을 전하면서 “EU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에너지 무기화’를 막기 위해 ‘눈에는 눈’식 조치를 잇따라 내놓자, 에너지를 무기화하려던 푸틴의 의도가 점점 더 먹혀들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연설 말미에 “급등한 에너지 가격으로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챙긴 유럽 에너지기업들로부터는 초과이익을 환수해 소비자들의 부담을 줄이겠다”고 강하게 언급했다. 고공행진 중인 석유·천연가스 가격으로 인해 에너지 수입사 뿐 아니라 풍력 태양력 원자력을 통해 전력을 생산한 회사들까지 예상치 못한 수익을 얻자, 이들의 초과이익을 회수해 소비자들에게 에너지 사용 비용을 줄여주겠다는 발상이다.
유럽 내 국가들도 푸틴의 ‘에너지 무기화’에 맞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가장 높은 독일과 이탈리아는 대체 에너지원을 찾기 위해 알제리·카타르·세네갈·콩고·캐나다 등 여러 나라와 협상을 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그 결과 에너지 공급의 3분의 1 이상을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던 독일은 지난 8월에는 의존도가 10% 미만으로 감소했으며, 이탈리아의 경우 23%로 떨어졌다. 이탈리아 또한 연간 가스 수입량의 40% 이상을 러시아로부터 조달해오던 나라다. 독일 내 대규모 산업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금까지 에너지 소비량을 약 20% 줄이는 데 성공했다.
유럽 내에서 서로 협력하는 국가도 등장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최근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에너지를 맞교환하기로 했다. NYT에 따르면 프랑스는 잉여 천연가스를 독일에 보내는 데 동의했고, 그 대가로 독일은 프랑스에 추가 전력을 보낼 예정이다.
영국 또한 국내 에너지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북해 석유와 가스 탐사 계획을 허가할 방침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가 이끄는 영국 행정부가 최대 130건의 탐사 계획을 허가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트러스 총리는 지난 6일 취임 후 첫 연설에서 “에너지 요금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나랏빚을 늘려 가계와 기업을 지원하고, 미래 에너지 공급원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환경단체 등에서는 탐사 계획을 반대하고 있음에도 트러스 총리가 에너지 문제에 적극적인 이유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오름에 따라 영국 내 전기·가스 요금이 급격히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주요 7개국(G7)이 지난 2일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에 대한 가격상한제를 시행키로 합의하자,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을 전면 동결하겠다고 통보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