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즉위 이후 문서에 펜으로 서명하는 과정에서 연이어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찰스 3세가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모습에 일부 ‘만년필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짜증 날 만도 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역사적인 공식 문서에 서명할 경우 고급 만년필을 쓰는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에 따른 즉위선언 행사 당시 책상에 놓였던 펜은 저가 제품으로 격식에 걸맞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분노의 원인은 ‘의전 실패’ 탓이라는 해석이었다.
다만 그렇다 해도 찰스 3세 국왕이 역사적인 순간에 얼굴을 붉히며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건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13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찰스 3세는 이날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인근 힐스버러성을 방문해 방명록에 서명하는 도중 펜의 잉크가 손에 묻자 짜증을 냈다.
SNS 등 온라인상에 올라온 영상에 따르면 찰스 3세는 이날 손에 묻은 잉크를 보면서 “너무 싫다”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커밀라 왕비가 펜을 받아든 뒤 “여기저기 흘렀네”라고 말을 받았다.
찰스 3세는 다시 “이런 빌어먹을 것은 못 참겠다”며 “허구한 날 말이지”라고 거칠게 말했다. 이날 찰스 3세는 서명을 하고 나서 보좌관에게 “오늘이 9월 12일인가”라고 물었고 보좌관은 “13일입니다, 폐하”라고 대답하자 “어이구, 날짜를 잘못 썼네”라며 다시 쓰기도 했다.
찰스 3세는 지난 10일 세인트 제임스궁에서 열린 즉위위원회 행사에서도 문서에 서명을 하며 책상 위의 펜대를 치우라는 듯이 여러 차례 짜증스럽게 손을 내젓는 모습이 영상에 포착됐다.
찰스 3세는 즉위 선언문에 서명하는 과정에서 책상에 놓여 있던 만년필 통을 치우라고 손짓했고, 수행원은 즉시 이를 책상에서 치웠다. 찰스 3세는 미리 준비된 펜을 쓰지 않고 재킷 안주머니에서 자신의 만년필을 꺼내 잉크병에 담가 잉크를 묻힌 뒤 문서에 서명했다. 찰스 3세가 이때 사용한 만년필은 고가의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6 솔리테어 르그랑’ 모델인 것으로 전해졌다. 가격은 1620유로(한화 약 220만원) 정도다.
트위터에서는 즉위 선언식 당시 책상에 올라온 펜이 일본 파이롯트(Pilot)사에서 만든 저가의 브이펜(V-pen)이라는 내용이 회자되기도 했다. 찰스 3세가 역사적인 의전 행사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 올라와 있는 걸 보고 분통을 터뜨린 게 아니냐는 해석이었다.
해외의 한 트위터 사용자는 “영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누군가 적절한 펜을 제공하는 걸 잊어버렸다”며 찰스 3세가 아닌 다른 인물이 즉위 선언식에서 브이펜을 쥐고 서명하는 모습의 사진을 올렸다.
만년필 마니아라고 밝힌 국내의 한 누리꾼도 1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만년필 덕후가 인정하는 찰스 3세의 착한 빡침’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저건 진짜 의전 담당이 선을 넘었다”며 “찰스 3세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우라고 짜증을 낸 트레이에 있는 만년필은 3000~4000원 정도 하는 일본 파이롯트사의 브이펜이었다”고 지적했다.
누리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한 누리꾼은 “사랑하는 어머니가 떠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게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의전 문제가 있었으니 감정 조절 못한 게 이해가 된다”고 했다. “팬 마니아로서 저런 자리에 저런 펜을 놔둔 건 선을 넘은 거다” “명백한 의전 실패” “이렇게 보니 또 이해가 가긴 하네”라는 반응도 이어졌다.
반면 비판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한 누리꾼은 “평생 이미지를 관리해야 하는 왕실 인사가 카메라 앞에서 기분대로 행동한 것”이라며 “근엄한 군주가 아니라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일반인이라고 스스로 외친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누리꾼은 “펜의 의미가 아무리 중요해도 저런 자리에서 짜증 내는 행동이 옳게 보이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