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현지시간) 발생한 러시아 크림대교(케르치해협대교) 폭발 사고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중대한 전환 국면을 맞게 됐다.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 사이 핵심 보급로인 이 다리의 훼손으로 전세는 러시아에 더 불리해졌다. 이번 폭발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자극해 그가 전술핵무기 사용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요 외신은 이번 사고로 러시아가 군수물자 보급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 다리가 없으면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에서 교전 중인 러시아군의 보급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러시아가 비용, 시간, 안전에서 크림대교와 비교할 대안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현재 전장(戰場)인 우크라이나 동부에 대한 러시아 보급로가 크림대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남동부를 지나는 철도를 통해서도 무기와 식량을 공급할 수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땅을 지나지 않고 직접 크림반도를 잇는 경로는 크림대교가 유일하다. 러시아로선 안전성, 신뢰성, 수송 용량 등에서 이를 대체할 보급로가 없다.
크림대교 폭발은 러시아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19㎞ 길이의 크림대교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불법합병한 2014년 직후 기획됐다. 러시아는 2500억 루블(약 5조6000억원)을 들여 3년간 공사를 진행해 2018년 다리를 개통했다.
푸틴 대통령은 개통식에서 “차르(황제) 시대에도 이 다리를 건설하는 꿈을 꿨는데, 마침내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WP는 “크림대교는 푸틴의 신화성,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 수행능력, 러시아의 위대함을 회복하려는 야망의 상징이었다”며 “이번 폭발은 러시아에서 푸틴에 대한 비판 여론을 심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폭발은 이날 새벽 크림대교를 건너는 트럭 한 대가 폭발하면서 화재가 발생해 시작됐다. 불은 철도 구간까지 번져 화물열차의 연료탱크 7량으로 옮겨붙었으며 3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폭발 직후 양방향 모두 통제됐던 크림대교는 현재 무너진 구간을 제외한 나머지 차량용 교량 운행은 통행이 부분 재개됐다. 완전 복구에는 여러 달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고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소행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은 사고 직후 “이번 사건이 시작이며 (러시아가 만든) 불법적인 것은 모두 파괴되어야 한다”고 밝혔으나 연관이 있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개전 이후 크림대교 파괴 위협을 여러 차례 해 왔다. 푸틴 대통령은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이번 사건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러시아 강경파는 크림대교 폭발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확대할 것을 촉구했다. CNN은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더 큰 도박을 하는 것이 더 쉬운 길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