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열린 스포츠클라이밍 국제대회에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출전했다가 실종 의혹에 휩싸인 이란 여성 선수가 19일(현지시각) 환영 속에 이란에 귀국했다.
스포츠클라이밍 이란 대표인 엘나즈 레카비(33)는 이날 새벽 3시45분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주한 이란대사관이 그의 실종설을 부인하며 귀국 소식을 알린지 20시간만이다.
레카비의 안전을 우려하며 공항에서 기다리던 수백명의 환영 인파가 “레카비는 영웅”이라 외치고 박수를 치며 반겼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에는 검은 캡모자 위로 검은 후드모자를 쓴 채 입국장으로 나온 그가 가족들과 포옹하고 꽃다발 여러 개를 전달받는 모습도 포착됐다.
레카비는 공항에서 이란 국영방송 IRNA와 진행한 짤막한 귀국 인터뷰에서 “긴장과 스트레스가 많긴 하지만 평화로운 마음으로 이란에 돌아왔다”며 “신께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서울 대회 당시 히잡을 쓰지 않은 채 경기에 나선 이유에 대해서는 “신발을 신고 장비를 챙기느라 분주해 히잡 쓰는 것을 까먹고 경기에 임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그가 전날 귀국길에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해명과 유사한 것이다. 지난 18일 그의 인스타그램에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히잡 문제가 불거진 것은 나의 부주의였다”면서 “국민에게 걱정을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글이 게시된 바 있다. 이 게시물에는 그가 예정된 일정에 따라 귀국길에 올랐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테헤란 공항을 빠져나온 레카비는 승합차에 올랐고, 차량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인파를 뚫고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그가 이후에 어디로 갔는지는 불확실하다고 AP는 보도했다.
BBC 중동판의 세바스티언 어셔 에디터는 레카비가 대중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덕분에 그가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가라앉을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이 그의 안전이 더 확실히 보장되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레카비 실종 의혹을 처음 보도한 BBC 페르시아어 서비스는 히잡을 쓰지 않고 경기에 출전한 이란 여성 선수들이 과거에도 사과를 강요받은 적이 있다면서 레카비가 인스타그램에 쓴 입장문이 강압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거듭 의혹을 제기했다.
레카비는 지난 10일부터 16일까지 서울 한강변에서 열린 2022 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획득했다.
해외 언론은 그가 대회 마지막 날 실종됐다면서 히잡 미착용과 연관됐을 가능성을 보도했다. 여기에 최근 이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히잡 시위’와 맞물리며 그의 행방은 국제적인 관심사가 됐다.
레카비가 히잡을 쓰지 않고 경기에 나선 것은 이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히잡 시위’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앞서 레카비는 2016년 프랑스 유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경기 중 열을 배출해야 하는데 히잡이 이를 방해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과 텔레그래프 등은 전날 BBC 페르시아어 서비스를 인용해 레카비와 지난 16일부터 연락이 끊겼으며 그가 이란 당국에 여권과 휴대전화를 압수당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주한 이란대사관은 지난 18일 트위터를 통해 이를 ‘가짜뉴스’라며 강하게 부인하며 그가 다른 팀원들과 함께 이날 일찍 서울에서 이란으로 출발했다고 밝혔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모든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했다. 공개된 장소에서 히잡을 쓰지 않으면 2개월 이하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한다.
해외에 나간 여성과 외국인 방문객도 히잡 착용은 필수다. 이란 당국은 2019년 국제경기에 히잡을 쓰지 않고 출전했던 여성 권투 선수 사다프 카뎀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현재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 주요 도시에서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가 체포돼 경찰서에서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22) 사건으로 촉발한 시위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김은초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