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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정보 차단·자기 세계 고립… 푸틴 머릿 속 ‘오리무중’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정신이상설까지 제기되지만 이런 접근은 위기 대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푸틴 대통령은 극도로 고립돼 다른 견해나 정확한 정보를 접하지 못하는 상태인 것으로 추정된다. 침공 계획을 미리 파악했던 서방 정보당국은 현재 푸틴 대통령의 의중과 러시아의 다음 행보를 예상하는 데 애를 먹는 것으로 전해졌다.

리더십과 정치심리학 전문가인 케네스 데클레바 조지 H W 부시 미·중관계재단 선임연구원은 “푸틴이 비록 더 급한 모습을 보이고 최근 몇 년간 더욱 고립됐을 수는 있지만 정신병을 앓고 있지도 않고 변한 것도 아니다”라고 1일 영국 BBC에 말했다. 미국 국무부에서 외교관과 해외 의료 책임자로 일한 그는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각국 주요 정상의 리더십을 분석한 바 있다.

이 분야에 정통한 또 다른 심리학자는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그 결정을 내린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은 실수”라고 말했다고 BBC는 전했다.

서방 정보요원들은 오랫동안 푸틴 대통령의 머릿속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해 왔다. 러시아의 모든 중대 결정이 푸틴 대통령 손에 있는 만큼 그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은 전부를 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고전하는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해야 할 필요성은 한층 절실해졌다. 러시아군이 지금처럼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상해야 위기 확대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핵 위협’ 카드를 수시로 내보이고 있다.

BBC는 “러시아 지도자 블라디미르 푸틴은 자신이 만든 ‘닫힌 세계’에 갇혀 있다고 서방 스파이들은 믿고 있다”며 “그것이 그들을 걱정시킨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폐쇄성은 지난달 우크라이나 침공 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났을 때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까지 날아온 마크롱 대통령을 긴 탁자 맨 끝에 앉히고 자신은 정반대편에 멀찍이 앉아 회담했다. 말소리가 제대로 들리기나 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흘렸는지는 몰라도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 서방 정보요원들은 정보원들을 통해 웬만한 러시아 지도부 내부 인사들보다 해당 계획에 대해 많이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푸틴 대통령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게 그들의 하소연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러시아 관련 작전을 수행한 적 있는 존 사이퍼는 “크렘린궁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푸틴이 모스크바에서 유일한 의사결정권자라는 점”이라고 BBC에 말했다. 영국 정보기관 MI6 국장을 지낸 존 소워스는 “러시아처럼 (기밀이) 잘 보호되는 체제에서, 특히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많은 국민이 모르는 상황에서 지도자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좋은 정보를 얻기는 극도로 어렵다”고 말했다.

정보 당국자들은 푸틴 대통령이 스스로 만든 ‘거품’ 속에 갇혀 있다고 말한다. 외부 정보를 차단하는 이 거품은 푸틴 대통령의 생각에 반하는 정보라면 더더욱 침투하지 못하는 폐쇄 공간이다.

‘스파이와 첩보활동의 심리학’ 공저자 아드리안 퍼넘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심리학과 교수는 “그(푸틴)는 특정 수의 사람에게만 귀 기울이고 다른 모든 것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자신이 벌이는 선전의 희생자”라며 “이것이 그에게 이상한 세계관을 제공한다”고 진단했다. 2014년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푸틴 대통령이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퍼넘 교수는 주변인 모두가 푸틴 대통령의 견해를 강화하는 이른바 ‘집단사고’가 위험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이 대화하는 사람은 원래 많지도 않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에 함께한 이들은 그의 사고방식과 강박을 공유하는 극소수로 더욱 좁혀졌으리라는 게 서방 정보 당국자들 생각이다.

전쟁을 감행한 푸틴 대통령의 결정 밑바닥에는 옛 소련 시절 위상에 대한 집착과 서방이 자신을 몰아낼 것이라는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은 푸틴 대통령의 정신 상태에 대해 “그는 수년간 불만과 야망 속에서 마음을 졸여왔다”며 “그의 관점은 단단히 굳어졌고 다른 관점들으로부터 훨씬 더 격리됐다”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자신을 더욱 격리시킨 것이 심리적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푸틴 대통령이 침공을 원하는 상황에서 러시아 정보기관은 그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배제한 채 장밋빛 전망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한 서방 당국자는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군에 얼마나 나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방은 푸틴 대통령이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가 최악의 상황에 봉착했을 때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데클레바 선임연구원은 “푸틴은 실패나 나약함을 경멸한다”며 “궁지에 몰리고 약해진 푸틴은 더 위험한 푸틴”이라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