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국 내 국민을 향해 우크라이나 침략에 반대의견을 표출하는 이들을 신고할 것을 촉구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22세 여성이 최근 손님에게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러시아 경찰에 체포돼 24시간 동안 구금당했다고 보도했다. 이 여성은 우크라이나 침략을 두고 푸틴을 지지하는 손님 의견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고발됐다.
그는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그냥 가벼운 잡담이었으나, 손님은 (내가)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것에 격분했다”며 “손님이 가게에서 나가고 한 시간쯤 지나 경찰이 왔다”고 증언했다.
데일리메일은 같은 날 보도를 통해 “러시아 당국이 우크라이나 침략에 반대하는 가족·친구·이웃 등을 고발하라며 이를 위한 핫라인과 웹사이트 등을 개설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을 옛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에 빗댔다. 푸틴 대통령이 반전 견해를 밝히는 국민을 탄압하는 것이 국가보안위원회(KGB) 전신인 내무인민위원회(NKVD)를 동원해 정적과 반대 세력을 숙청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러시아 인권감시단체 ‘OVD-인포’도 러시아 당국이 핫라인을 개설해 국민이 서로를 신고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최근 러시아 중부 펜자의 한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전쟁에 반대한다”는 선생님의 발언을 녹음해 신고하는 일이 벌어졌다.
알렉산드라 배바 OVD-인포 법률부서 책임자는 “현재 러시아는 1937년과 같다. 사람들이 두려움에 서로를 고발하고 있다”며 “이런 핫라인은 러시아 국민 사이에서 공포와 불신의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성토했다.
러시아 정부가 반전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며 공포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온다. OVD-인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 이후 현재까지 1만5000명 이상이 시위에 나섰다가 구금됐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일부 시위대를 구타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현재 러시아 당국은 자국 내 151개 도시에서 벌어진 반전시위 가담자 1만4000여명을 구금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6일 TV 연설에서 ‘사회의 자정 작용’을 언급하며 국민이 서로의 감시자가 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그는 “러시아 국민은 진정한 애국자와 쓰레기, 반역자를 구별할 수 있고 그들을 우연히 입에 들어온 날파리처럼 뱉어낼 것”이라며 “이러한 자연스러운 사회의 자정 작용이 우리의 결속력을 강화한다”고 주장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