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거대한 ‘레드 웨이브’(공화당의 상·하원 승리)는 없었다. 공화당은 4년 만에 하원 다수당을 탈환했지만 상원에선 다수를 차지하지 못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최악의 인플레이션 비판 속에서도 선전했다.
다만 공화당이 입법권과 조사권이 있는 하원을 장악해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정책은 추진력을 잃을 가능성이 커졌다. 정국이 격렬한 대결 국면으로 접어들어 여야 갈등은 더 심화할 우려가 커졌다.
뉴욕타임스(NYT)와 NBC방송 등은 9일 오전 3시 현재 공화당이 하원 의석 220~224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과반(218석)을 간신히 웃돈 결과다. 주요 선거 분석 기관들은 전날까지만 해도 공화당이 민주당에 최소 10~30석 우위를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공화당이 빼앗은 의석수는 10석이 채 안 된다는 분석이 많다.
사전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우세 지역으로 지목돼 일찌감치 승부가 날 것 같았던 여러 전장에서 접전이 거듭됐다. 오히려 민주당의 수성이 돋보였다.
민주당은 35명을 뽑는 상원 선거에서 기존 지역구 14곳 모두에서 승리했다. 공화당 차지였던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존 페터먼 민주당 후보가 메메트 오즈 공화당 후보를 제치며 한 석을 뺏어왔다. 초경합지 조지아주에서 라파엘 워녹 민주당 후보가 허셸 워커 공화당 후보에게 우위를 보였다.
다만 조지아주는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결선을 치러야 해 승부가 다음 달로 미뤄졌다. 민주당은 조지아주를 잃는다 하더라도 다른 경합주를 모두 이기면 현재 ‘50대 50’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캐스팅보터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몫까지 포함하면 다수당이 된다.
이번 선거는 지난해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 4년 임기의 중간평가 성격이 컸다. 통상 정권 교체 후 치러지는 첫 중간선거는 ‘여당의 무덤’이었던 전례가 많았다. 살인적인 물가 상승으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도 낮아 공화당의 손쉬운 압승도 예상됐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위기를 앞세운 ‘트럼프 심판론’, 여성 낙태권 보장과 학자금 대출 탕감 등 지지층 결집을 노린 정책 홍보가 공화당 바람을 상당수 막아냈다. 조기 레임덕 우려가 제기됐던 바이든 대통령은 한숨을 돌리고 차기 대선 주자의 지위도 당분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여야 대결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 사안에 대한 청문회를 예고했었다. 공화당 강경파 사이에선 ‘바이든 대통령 탄핵’ 목소리도 제기됐다. 차기 하원의장으로 유력한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전날 CNN 인터뷰에서 “우리(공화당)는 정치적 목적으로 탄핵을 이용한 적이 없지만, 전혀 이용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는 아니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또 “백지수표는 안된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축소 의지를 시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주요 접전지역 후보들의 승리가 확정될 때마다 직접 전화를 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하원 승리 분석이 나오자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174명이 이겼고 9명이 졌다. 정말 훌륭한 후보들이 엄청난 일을 해냈다”고 적으며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승리했음을 강조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