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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럽 감기약 먹었을 뿐인데… 아동 수백명 ‘의문의 죽음’


아이들에게 감기는 흔한 질병이다. 흔한 만큼 약의 종류도 많고 안전성과 효과도 어느 정도 입증돼 있다. 어느 부모도 감기약이 자신의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동부 브카시에 살던 두 살배기 우마르 아부 바카르의 부모도 그랬다. 지난 9월 중순 아들 우마르가 열이 나고 설사를 시작했다. 우마르의 엄마 시티 수하르디야티는 아들을 지역 보건소에 데려갔다. 보건소에서는 가장 일반적인 해열 치료제인 파라세타몰 시럽을 포함해 세 가지 약을 처방해줬다.

보건소에 다녀온 지 3일째부터 우마르가 소변을 보지 않았다. 매일 아침 젖어 있던 기저귀는 새것처럼 보송했다. 병원에 옮겨졌지만 아이의 상태는 급격하게 나빠졌다. 우마르는 9월 24일 사망했다. 병원에서 알려준 사인은 신부전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BBC에 “이 기침 시럽에 어떻게 위험한 물질이 들어있을 수 있습니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아프리카 감비아에서 가장 큰 도시 세레쿤다에 거주하는 마리암 쿠아테의 집에는 아들 무사의 빨간색 장난감 오토바이가 여전히 굴러다닌다. 아들이 사망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가족 중 누구도 장난감을 치울 생각을 하지 못한다.

20개월이던 무사가 감기에 걸리자 의사의 처방을 받아온 남편이 시럽으로 된 감기약을 사 왔다. 시럽 약을 먹고 감기는 나았지만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무사도 우마르처럼 소변을 보지 않았다. 급성 신장 질환이었다. 무사는 병원으로 옮겨져 오줌을 빼내기 위해 카테터 장착까지 했지만 지난 9월 끝내 사망했다.

인도네시아와 감비아에 시럽형 감기약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8일 현재까지 최소 195명이, 감비아에서는 70명이 오염된 감기약을 복용한 후 급성 신장 손상 및 기타 합병증으로 숨졌다. 사망자 대부분이 5세 미만의 아동이다. 인도네시아 보건부가 7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밝힌 아동 급성 신장 질환 사례는 324건이다.

정확한 원인은 조사 중이지만 인도네시아와 감비아 당국은 시럽 형태의 의약품을 의심하고 있다. 조사 결과 두 나라 모두 피해 아동들이 복용한 시럽형 감기약에서 안전 기준치를 초과한 에틸렌글리콜·디에틸렌글리콜 등이 발견됐다.

에틸렌글리콜과 디에틸렌글리콜은 일반적으로 부동액과 브레이크 오일 등에 쓰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독성이 있어 급성 신장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가격이 저렴해 일부 값싼 의약품에서는 시럽형 감기약에서 점도를 높이는 데 쓰이는 글리세린의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피해자가 속출하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모든 액상 의약품의 판매를 금지했다. 아이들에게 약이 필요할 때는 알약을 부숴서 주라고 조언하고 있다. 감비아 당국도 자국에서 유통되는 모든 시럽형 감기약을 회수할 것을 명령했다.

인도네시아 식품의약품안전처(BPOM)는 지난달 31일 의약품 제조 규정을 위반한 현지 회사 야린도 파르마타마와 유니버설 제약의 시럽형 의약품 생산 허가를 취소했다. BPOM은 두 회사가 표준 이하의 원료로 의약품을 생산하고 성분 변경을 보고하지 않았으며 일부 재료를 가이드라인을 초과하여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야린도 파르마타마는 논평을 내고 “표준 이하의 원자재를 사용한 적은 없으며, 성분 변경의 경우 BPOM이 2020년 승인을 했다. 유통업체에도 문제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유니버설 제약은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논평을 거부했다.

감비아 피해 아동들이 복용한 것으로 알려진 감기약은 인도 의약품 기업 메이든에서 수입된 것이다. 이 약에서도 같은 성분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 이를 조사한 WHO는 감비아에 유통된 인도산 시럽형 감기약 4개에서 에틸렌글리콜과 디에틸렌글리콜이 “허용할 수 없는 양” 이상으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감비아에서 5개월 난 딸 아이샤를 잃은 마리암 시사워는 “약들이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 사람이 섭취해도 안전한지 제대로 확인해야 했다”고 지적한다. 감비아에는 현재 의약품 안전성을 테스트할 수 있는 실험실이 없다. 무스타파 비트테이 감비아 보건 서비스 책임자는 BBC에 “확인을 위해서는 해외로 (약들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비판이 거세지자 아다마 바로우 감비아 대통령은 지난달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의약품 검사를 위한 실험실을 만들 예정이며 보건부에는 수입 의약품에 대한 관련 법률과 지침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고 전했다.

WHO는 문제의 인도산 의약품이 감비아를 제외한 다른 나라로 수출됐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도 당국과 문제의 약을 제조한 메이든사는 4개의 시럽형 감기약이 감비아에만 수출됐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인도산 시럽을 현지에서 구할 수 없다고 전했다. 다만 밀수로 유통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WHO는 감비아에서 확인된 네 가지 약품이 “비공식 시장을 통해 다른 국가나 지역에 배포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WHO는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인도네시아에서 파는 8개 제품이 품질 표준을 충족하지 못했으며 독성 유해 성분이 검출됐다고 경고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