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던 차량은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됐다. 무차별 폭격을 당해 포연 속에서 까맣게 탄 채 멈춰섰다. 아나톨리 쿠시니르 목사는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안전한 지역으로 피신시키기 위해 체르니히우로 이동하던 다섯 대의 밴이 지난달 31일 도로에서 폭격당한 상황을 촬영한 동영상을 국민일보에 보내왔다. 다섯 대 중 폭격을 피한 건 한 대뿐이었다. 최근 러시아군의 민간인 무차별 공격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쿠시니르 목사는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우크라이나 복음화를 위한 초교파 단체 POKLIK협회를 이끌다 러시아 침공 이후 버스 2대와 밴 5대를 확보했다. 이후 피란민에게 긴급구호품을 전달하고 건물 지하에 숨어 있던 사람들을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시켰다.
다섯 대의 밴은 지난달 18일에도 키이우 필라델피아복음주의교회 지하에 숨어있던 70여명을 태우고 서부 지역으로 이동했다(국민일보 3월 23일자 31면 참조). 쿠시니르 목사는 “기독교인 동역자들이 체르니히우에 있는 피란민들을 태우러 가던 중 폭격을 당했다”면서 “2명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부상을 입은 2명은 병원에서 치료 중”이라고 전했다. 현지 인터넷 언론인 센서넷도 “러시아군이 사람들을 대피시키려고 러시아 점령 지역으로 향하던 5대의 자원 봉사 차량을 폭격해 사람들을 사살했다”고 보도했다.
유일하게 폭격을 피한 차량은 당시 긴박한 상황을 오롯이 담고 있었다. 곳곳엔 성인 남성의 검지손가락이 들어가고도 남을 총탄 자국이 남아있었다. 보조석 유리창은 비닐로 막아 놓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눈길이 간 건 차창에 부착된 스티커였다. 우크라이나어로 ‘아이들’이라는 글자와 함께 두 아이가 뛰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인도주의 운송을 의미하는 적십자 마크도 붙어 있다().
쿠시니르 목사는 “그림은 러시아인도 알고 있는 도로 규칙으로 어린이가 탑승했음을 나타낸다. 주로 스쿨버스에 붙인다”며 “아이들이란 글자, 도로 표지, 적십자 표식만 봐도 러시아인들은 자신이 누구를 쏘고 있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가 피란민을 태우러 가던 길이었기에 인명 피해가 적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쿠시니르 목사와 동역자들은 사역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쿠시니르 목사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다시 달릴 계획”이라며 “차량이 달릴 연료를 사고 음식과 약을 구입할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이 마음을 모았으면 한다. 평화와 안전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