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역사에서 처음으로 인류가 자연을 지배하고 변형시키는 시대를 뜻하는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가 공식화될 전망이다. 세계 지질학자 30여명으로 구성된 ‘인류세워킹그룹(AWG)’이 조만간 인류세의 시작점을 포함한 세부 내용을 정하기 위한 투표에 돌입해서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인류세가 도래했다는 데 저명한 지질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면서 “AWG가 조만간 인류세의 공식화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인류세는 인간이 자연을 장악하고 지질·기후·환경 등을 불가역적으로 변형시키는 시대를 일컫는 개념이다. 20세기 폭발적 산업화를 거치면서 시작된 이 시기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자연에 종속·지배되던 이전의 지구 역사와 완전히 다르다.
AWG가 투표에 부친 세부 내용에는 인류세 특성 정의에 필요한 지질 표본을 어디로 할지도 포함됐다. 후보지는 폴란드의 이탄지(泥炭地), 남극반도의 빙하, 일본 해안의 만(灣) 등 9곳이다. AWG는 이달 초 인류세 단위를 ‘세(epoch)’로 규정할지, 세에 속한 ‘절(age)’로 규정할지도 투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AWG의 투표 결과와 향후 진행될 투표 내용 등은 권고안이 최종 완성될 때까지 공개하지 않는다. AWG는 모든 내부 투표 절차가 마무리되는 내년 봄쯤 지질학위원회 등 3곳 위원회에 권고안을 제출해 인류세 공식화 여부를 판단받을 것으로 보인다. 각 위원회에서 60% 이상의 승인을 얻으면 인류세는 지질시대 중 하나로 인정된다.
AWG는 2019년 전체 34명 회원 가운데 29명의 찬성으로 인류세 시작점을 20세기 중반으로 잡는 데 합의한 바 있다.
20세기 중반은 플라스틱과 각종 합성물질에 의한 자연환경 오염,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기후변화 등이 급격히 시작되고 핵무기 사용과 실험에 따른 각종 방사성물질, 비료나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물질이 지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시기다.
콜린 N 워터스 AWG 위원장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1920년대였다면 ‘자연은 인류가 영향을 미치기엔 너무 거대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지난 세기 그런 관점은 완전히 뒤집혔다”며 “소행성 충돌과 맞먹는 충격적인 일이 그때부터 일어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고학자와 인류학자 가운데 지질시대 전환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20세기 중반으로 보는 관점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 NYT는 “인류세가 이미 많은 학자 사이에 통용되고 있는 만큼 이를 도입하되 보다 느슨한 잣대를 활용해 혼선을 방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했다.
지구의 46억년 역사는 가장 큰 시간 범위인 ‘누대(eon)’를 시작으로 ‘대(era)’-‘기(period)’-‘세(epoch)’-‘절(age)’ 단위로 구분된다. 현재는 ‘현생누대 신생대 4기 홀로세 메갈라야절’이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