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19일(현지시간) 네덜란드의 노예제 과거에 대해 공식사과했다.
뤼터 총리는 이날 헤이그 국가기록관에서 연설을 하고 “네덜란드 정부 아래서 인간의 존엄성은 수 세기 동안 가능한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침해당했다”며 “네덜란드 정부는 우리의 과거 노예 제도가 계속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네덜란드 정부의 사과를 전한다”고 말했다.
뤄터 총리의 이번 발언은 네덜란드 정부 차원의 첫 공식 입장 표명이자 2021년 7월 노예역사대화그룹(Slavery History Dialogue Group)이 2021년 7월 발행한 보고서 “역사의 사슬”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이다. 지금까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위트레흐트, 헤이그 시장 및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 등이 개별적인 사과를 해왔다.
네덜란드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약 250년간 ‘황금시대’를 누리면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자 60만 명을 노예로 착취했다. 뤼터 총리는 당시 남녀는 물론 어린이 60만 명가량이 아프리카 등에서 네덜란드령이던 남미의 수리남 등으로 강제 이송됐다며 ‘부끄러운 역사’라고 시인했다.
뤄터 총리는 노예 제도가 “인류에 대한 범죄”로 비난받아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노예 제도에 있어서 네덜란드의 역할이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이날 연설 현장에는 노예제 피해자 후손들도 초청됐다. 20분간 진행된 총리 연설은 현지 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뤼터 총리는 연설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노예제 피해자들의 후손에 대한 정부 차원의 배상금 지급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면서 “대신 노예제 유산 청산 및 인식 전환을 위한 교육 기금 2억 유로(약 2700억 원)를 편성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앞서 과거사 해결을 촉구해온 관련 단체들은 네덜란드 정부가 공식 사과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알려진 뒤 네덜란드 식민지 노예제 폐지 160주년인 내년 7월 1일 공식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일부 단체는 네덜란드 법원에 총리 연설을 막아달라며 법원에 일종의 행정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편 수리남 국가배상위원회 측은 이날 사과가 과거사 해결을 위한 ‘진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연설에서 ‘책임과 의무’에 관한 내용은 쏙 빠졌다”고 짚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