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폭발 당시 참혹했던 상황을 전했다.
8일(현지시간)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에서 AFP통신과 만난 나탈리아씨는 이날 오전 러시아군의 미사일이 떨어졌을 때 상황에 대해 “폭발음이 두 번 들렸다. 몸을 피하려고 벽 쪽으로 달려갔다.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역 안으로 들어가고, 땅바닥 여기저기에 시체가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역 안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주민 옐레나 칼레몬바씨는 미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에 “도처에 사람들이 있었다. 떨어져 나간 팔다리와 살점, 뼈들이 사방에 널려있었다”면서 “폭발로 유리창이 산산조각이 나 피란민으로 가득 찼던 대기 구역으로 파편이 날아들었다. 한 노인은 다리를 잃었고, 다른 사람은 머리를 잃었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의 미사일은 이날 오전 10시30분쯤 떨어졌다. 기차역엔 러시아군의 공습을 피해 중서부 지역으로 가는 첫 기차를 기다리던 여성과 어린이 등 민간인 수천명이 있었다.
러시아군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당국의 경고에 최근 며칠간 기차역에 피란민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친러시아 분리주의자이 있는 전략적 거점 돈바스 지역의 완전 장악을 위해 공세를 강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군이 쏜 토치카-U 단거리 탄도 미사일 공격으로 최소 50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외신에 의해 전해진 상황은 참혹하다. 군과 경찰은 시신들을 모아 방수포로 덮었다. 피투성이가 된 짐과 개인 물품이 역과 승강장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불구가 된 한 개가 희생자 옆에서 떨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AFP는 “민간인 복장의 시신 약 30구가 시트에 덮여있었으며 땅바닥에는 피가 고여 있었다”고 전했다. 승강장에 놓인 시신 옆에는 빨갛게 물든 지팡이와 장난감 토끼도 보였다. 벤치 아래에선 작은 운동화가 발견됐다. 시신들 사이로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기도 있었다.
한 여성은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남편을 찾고 있다”며 떨고 있었다. 그는 “남편이 여기 있었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WP에 말했다.
한 남성은 첫 번째 폭발로 바닥에 쓰러졌지만 이후 다른 사람이 덮쳐 죽음은 면했다고 말했다. 온몸에 파편이 박히고 등과 다리에도 상처를 입은 그는 “내 위로 떨어진 시체 덕분에 구원받았다. 그들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고 했다.
현장에선 러시아어로 흰색 페인트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러시아 파편이 발견됐다. 이는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2014년 1차 돈바스 전쟁 발발 후 그들의 손실을 언급하면서 반복적으로 썼던 표현이다.
도네츠크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기차역을 집속탄으로 폭격했다고 주장했다. 집속탄은 미사일 모체에서 소형폭탄 수백개가 흩뿌려져 넓은 지역에 무차별적인 살상을 가하는 무기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