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강화를 언급했다. 신뢰할 수 있는 국가 위주로 교역을 확대해 기존 공급망을 재편하는 일종의 ‘진영 무역’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협력 중인 중국을 견제하고, 제재 동참에 소극적인 국가를 압박하는 의도로 풀이된다.
옐런 장관은 13일(현지시간)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 연설에서 “무역 통합을 구축하기 위해 활용했던 다자간 접근 방식을 현대화해야 한다”며 “우리 목표는 안전한 무역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정 국가가) 원자재, 기술, 또는 제품에 대한 시장 지위를 이용해 우리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원치 않는 지정학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우리는 믿을 수 있는 국가와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옐런 장관은 “신뢰할 수 있는 많은 국가와 공급망 프렌드쇼어링을 강화하면 시장 접근을 안전하게 확장할 수 있고, 무역 파트너에 대한 위험이 낮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우리와 지정학적 긴장 관계이고 믿을 만한 공급을 기대하기 어려운 국가에 의존하기보다, 공급자 집단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옐런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와 기업을 경고하면서 나왔다. 옐런 장관은 이를 언급하며 “중립적인 태도로 (대러) 관계를 유지해 이득을 취하고, (관계 단절) 공백을 메울 기회를 엿보는 건 근시안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서방이 제재 훼손 행위에 대해 그냥 있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옐런 장관은 중국을 지목하며 “러시아와의 특별한 관계가 전쟁을 끝내는 데 도움이 되길 강력히 희망한다. 중국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글로벌 입지에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경제 문제를 국가 안보 등 광범위한 국익 고려와 분리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발언도 했다.
프렌드쇼어링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병목 현상을 겪은 뒤 이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으면서 등장했다. 공급망 재편을 통해 중국 등 비우방 국가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개념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지난해 11월 블룸버그 포럼에서 동맹과의 협력 강화를 언급하며 프렌드쇼어링 용어를 사용했다.
호주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스펙테이터 설립자 스테판 바르톨로메우스는 유럽연합(EU), 일본과의 철강분쟁 해결이 프렌드쇼어링 계획의 일환이라고 설명하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에 다음으로 확실한 친구는 아마도 한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미국이 추진 중인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도 공급망 프렌드쇼어링을 염두에 뒀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해 ‘2022 통상전망’ 보고서를 발표하며 “IPEF는 기존 무역협정을 넘어 공급망을 동맹국 위주로 재편하는 ‘깐부쇼어링’을 포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렌드쇼어링 정책은 미국과 중국 중심의 양극 체제 진영 무역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옐런 장관은 양극 시스템을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프렌드쇼어링은 일련의 규범과 가치를 준수하는 국가 그룹이 있고, 우리는 그들과 유대를 심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애틀랜틱 카운슬 지리경제 센터 조쉬 립스키 소장은 이에 대해 “여러 국가들에 ‘지금이 선택의 순간’이라는 암묵적인 경고였다”고 평가했다.
오릿 프렌켈 미 무역대표부 전 무역 협상가는 더힐 기고에서 “(프렌드쇼어링은) 미국이 새로운 외교정책 우선순위를 달성하기 위해 공급망을 활용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