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현지시간)로 유럽연합(EU)과 결별한 지 만 3년이 된 영국이 ‘진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의 저주를 맞고 있다. 영국은 금리 인상과 두 자릿수 물가 인상률, 재정 적자에 허덕였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선진국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경제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전날 세계경제전망보고서에서 영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0.6%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인플레이션 둔화 등으로 성장률 전망치가 올라간 미국(1.4%) 중국(5.2%) 일본(1.8%) 등에 비해 영국은 최악이나 다름없는 수치다.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곤경에 빠진 러시아(0.3%)보다도 낮다”고 평가했다.
영국 경제가 끝도 없이 수렁에 빠지고 있는 것은 10년 이상 장기집권한 보수당 정부가 브렉시트를 ‘저질러만’ 놓고 제대로 된 후속대책을 내놓지 못한 탓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넌드 매넌 캉스칼리지런던대학 교수는 NYT에 “해마다 우리 경제가 취약해지는 원인의 하나가 브렉시트”라며 “이제 경제 문제 논의마저 정치를 통해야 할 판”이라고 언급했다.
브렉시트 이전까지 영국 경제의 성장 동력은 EU 소속 동유럽 국가에서 유입된 값싼 노동력이었다. 그러나 3년 전부터 값싼 노동력은 유입되지 않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 이민 정책을 제대로 펴지 못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발길이 끊긴 것이다. NYT는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런던의 식당 웨이터부터 남부 평원지대 농업 종사자까지 일손이 없어 모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성장 동력인 유럽 금융의 허브 역할도 약화하고 있다. 투자은행과 다국적 금융기업들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발 금리 인상 행진의 직격탄을 맞았다.
경제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영국은 지난달 초부터 10년 만의 최대 규모 파업에 시달리고 있다. 민간 기업은 물론 교사 철도근로자 공무원 등 공공부문 종사자들까지 줄줄이 임금 인상 시위를 벌였거나 벌일 예정이다.
만년 적자인 국가재정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집권 한 달 만에 쫓겨났던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성급한 감세 정책으로 금융산업 전체를 위기에 빠뜨렸다. 재정적자 해소책 없이 세금을 줄이겠다고 하자 전 세계 투자자들이 영국에서 발을 뺐다.
그런데도 집권 보수당은 국내 문제인 도시계획과 이민 정책부터 EU와의 관계 설정 문제에 이르기까지 당내 합의조차 도출하지 못해 분란만 반복한다. 매넌 교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처음 시행된 2016년 이후 벌써 7년이 지났는데도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결정이 나온 적이 없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영국인들의 브렉시트에 대한 환멸은 커지고 있다. 2016년 첫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51.9%가 찬성했지만 지난해 11월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56%가 ‘브렉시트는 실수였다’고 답했다. 찬성 여론은 32%뿐이었다. 전체 629개 선거구별 조사에선 ‘영국이 EU를 떠난 게 잘못’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우세한 선거구가 무려 626곳이었다.
NYT는 “브렉시트 관련 정책과 여론 모두가 엉망인 상황에서 이를 다시 거론할 용기를 지닌 정치적 리더십이나 인물이 없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