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가 출범 한 달 만에 대중국 견제 법안 60여 개를 무더기 발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내 중국 기업 활동이나 투자를 제한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경제·산업 분야에서 중국 영향력 축소에 나서기 위한 전방위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여야가 공동 참여한 초당적 법안도 여러 건 제출돼 합의 가능성도 큰 것으로 전망된다.
11일(현지시간) 미 의회에 따르면 지난달 9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선출로 118대 의회 진용이 갖춰진 뒤 전날까지 미 상원과 하원에 중국을 직접 겨냥한 법안 60여 개가 발의됐다. 여야는 지난 의회에서 통과하지 못한 법안들도 서둘러 재발의 하며 중국 견제 고삐를 당겼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민주당 크리스 밴 홀런, 공화당 밋 롬니 의원은 지난 9일 중국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박탈하는 내용의 법안을 공동발의 했다. 롬니 의원은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 대국이며 경제적으로 미국을 능가할 수 있는 궤도에 올랐다”며 “국방비 지출과 막대한 해외 투자를 고려할 때 중국을 국제무대에서 계속 개발도상국으로 취급하는 건 터무니없고, 유리한 혜택을 누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공화당 마크 그린 하원 국토안보위 위원장은 중국에 진출한 제조업체가 남미 등 미주 지역으로 이전하면 저금리 대출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내용의 ‘니어 쇼어링’ 법안을 발의했다. 해당 자금은 대중국 관세로 마련토록 했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공급망 재배치 전략이다. 그린 위원장은 “중국에서 공급망을 되찾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수백만 명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할 초당적 법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공화당 칩 로이 하원의원은 중국 제조업체가 미국으로 이전할 때 세금 혜택을 제공해 리쇼어링을 촉진하는 ‘비트 차이나’(BEAT China) 법을 발의했다.
기업들이 중국과의 연관성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한 법안도 여러 건 제출됐다. 민주당 소속 크리스 파파스, 공화당 소속 루스 풀처 하원의원은 중국 정부가 소유하거나 일부 지분을 보유한 인터넷 웹사이트,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운영자가 소비자에게 관련 정보를 알리도록 한 ‘인터넷 애플리케이션 무결성 및 공개법’을 공동 발의했다. 중국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는지를 사전에 공개해 소비자나 투자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마시 캅터(민주당), 제프 던컨(공화당) 하원의원도 민감한 사용자 데이터가 중국 회사에 저장, 전송되거나 노출되는지 등을 공개하도록 하는 데이터 프라이버시 보호법을 공동 발의했다. 캅터 의원은 “미국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중국과 중국 연관 기업에 의해 착취당할 위험을 막아야 한다”며 “누가 미국 국민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지 공개해 적으로부터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클라우디아 테니 공화당 하원의원은 상장 기업이 중국 정부와의 관계를 공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투자 결정을 할 때 해당 회사가 중국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알리겠다는 것이다. 반중 감정을 자극해 중국의 투자 활동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공화당 소속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과 토니 곤잘레스 하원의원은 중국과 러시아, 북한, 이란이 군사 시설 인근의 부동산 구매나 임대를 금지하는 법안을 상원과 하원에 각각 제출했다. 하원 교통인프라 위원회에는 기반시설 프로젝트를 위해 책정한 연방 지원금이 중국 관련 기업에 들어가지 않도록 이를 제한하는 법안, 중국 관련 기업에 대출이나 보증, 지분투자 등을 금지하는 법안 등도 올라왔다.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는 중국 군산복합 관련 기업을 제재하는 중국 군사·감시기업 제재법, 대만 침공 때 국제금융시스템에서 중국을 제외하는 중국 퇴출법 등 17개 법안 심의를 시작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