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부차에서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집단 학살한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10대 소년이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눈앞에서 아버지를 잃었다고 증언했다.
영국 BBC는 6일 유리 네치포렌코(14)의 전화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부차에 있었던 유리는 지난 3월 17일 오전 11시쯤 아버지 루슬란(49)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구호품을 나눠주는 건물로 가고 있었다. 약과 식량을 받기 위해서였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부차에서는 전기, 가스, 수도가 끊긴 상태였다.
러시아군은 이들을 막아 세웠고 이들은 즉시 손을 들고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유리에게 고개를 돌렸는데 러시아 병사가 총격을 가했다. 아버지는 가슴에 총 두 발을 맞고 쓰러졌다.
병사는 유리의 손에도 총을 쐈고 유리도 넘어졌다. 병사가 쓰러진 유리를 향해서도 총을 쐈는데 총알이 유리의 후드티 머리 부분을 관통했다.
병사는 이미 쓰러져 있는 아버지의 머리를 향해 한 번 더 총을 쐈다고 유리는 전했다.
유리는 “난 작게 공황발작을 일으켰고 다친 팔을 내 밑에 두고 누워있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군인이 탱크 뒤로 가는 사이 유리는 일어나서 무작정 뛰었다.
유리의 어머니 알라는 루슬란이 부상을 당해 의료적인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리는 어머니에게 “그러지 말라. 그들이 나도 죽일 것”이라며 현장에 가지 말라고 빌었다.
알라는 남편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집을 나섰지만 이웃들이 그녀를 제지했다. 이웃들은 “러시아군이 영토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전했다.
알라와 유리는 다음날 아침 총격 현장으로 가 러시아 군인들에게 부탁했고 결국 루슬란의 시신을 수습해 집으로 왔다. 알라는 시신 사진을 BBC에 공유했고 BBC가 확인한 사진에는 가슴 오른쪽에 총상 흔적이 있었다.
유리는 자신과 아버지를 공격한 병사는 러시아군이 통상 입는 짙은 녹색 군복 차림이었고 착용한 방탄조끼에도 러시아어로 ‘러시아’로 쓰여있었다고 말했다.
루슬란은 변호사로 일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등 활동적이었다고 한다. 루슬란은 자신의 집 정원에 묻혔다.
부차 일대에서 러시아군이 저항할 수 없는 민간인을 고의로 학살했다는 증언이 속속 등장하면서 국제사회의 분노도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부차에서 발생한 민간인 대량 학살 의혹에 대응해 러시아에 대한 신규 투자 금지 등 추가 제재를 발표하기로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군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에 비유하면서 러시아의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퇴출을 요구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