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 국무장관[로이터=사진제공]독일 뮌헨안보회의(MSC)에 참석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18일(현지시간) 전격 회동했다.양국 외교 수장은 이른바 ‘정찰 풍선’ 사태 이후 처음 만나 1시간가량 대화했지만,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는 수준이어서 당장 갈등 완화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정찰풍선 용납 못 해…갈등 원치 않아”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회동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블링컨 장관은) 미 영공 내 중국의 고고도 정찰풍선으로 인한 미국 주권 및 국제법 위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했다”고 밝혔다.이어 블링컨 장관이 “이러한 무책임한 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며 “주권 침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5개 대륙에 걸쳐 40여 개국의 영공을 침범한 중국의 고고도 정찰풍선 프로그램은 전 세계에 노출됐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프라이스 대변인은 또한 “(장관은) 오늘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북한이 최근 수행한 가장 불안정한 활동이라고 규탄하고, 책임있는 강대국들이 이러한 중대한 국제적 도전에 대응할 필요성을 강조했다”라고도 했다.성명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오랜 기간 지속된 ‘하나의 중국’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도 덧붙였다.동시에 블링컨 장관은 “미국은 우리의 가치와 이익을 위해 싸우고 당당하게 지지할 것이지만 중국과의 갈등을 원치 않고 ‘신냉전’을 향해 가고 있지도 않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재확인하며 상황관리에 나섰다.블링컨 장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중국의 군사지원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발언도 했다.이와 함께 “중국이 러시아에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거나 체계적인 제재 회피를 지원했을 때 발생할 영향과 결과를 경고했다”고 중러 밀착을 경고했다.블링컨 장관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도 “(왕이를 만나) 중국 정찰풍선의 침범을 규탄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며 “러시아의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열린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적었다.블링컨 장관은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회담 중에 왕이 위원이 정찰풍선 사태에 대해 사과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보도에 따르면 그는 미국이 정찰풍선 격추에 있어 과잉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고 정찰을 시도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도 언급했다.◇ 중국 “무력남용…양국관계 끼친 손해 해결해야”왕이 위원은 자국의 풍선을 미국이 ‘정찰 풍선’으로 지목하고 격추한 것에 대해 ‘무력 남용’이라며 양국 갈등의 책임을 미국으로 돌렸다.18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안보회의(MSC)에 참석한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연설을 하고 있다. 2023.2.18[로이터=사진제공]중국 관영통신 신화사는 19일 왕 위원이 전날 블링컨 장관을 만나 이른바 비행선 사건에 대한 중국의 엄정한 입장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해당 풍선은 기상관측용 민간 무인 비행선으로, 바람의 영향으로 표류했을 뿐 미국 영공에 고의로 진입한 게 아니라는 기존 주장을 반복한 것이다.왕 위원은 블링컨 장관을 향해 ‘개현경장’(改弦更張·방침이나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의미)이라는 성어를 언급한 뒤 “무력 남용이 중미 관계에 끼친 손해를 똑바로 보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신화사는 왕 위원과 블링컨 장관의 이날 만남이 미국 측의 요청에 따라 진행됐고 비공식 접촉이라는 점도 강조했다.앞서 왕 위원은 이날 MSC에서도 미국의 풍선 격추와 관련해 “상상조차 할 수 없고 히스테리에 가까우며 무력을 남용한 것으로 명백한 국제협약 위반”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그는 “지구 상공에 매일 수많은 풍선이 떠다니는데 미국은 이것들을 다 격추할 것이냐”며 “이런 방법으로는 미국의 강대함을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왕 위원은 MSC에서 풍선 문제 외에도 미국의 ‘반도체 칩과 과학법’(반도체법), 우크라이나 사태, 대만 문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설명하면서도 사안마다 미국과 각을 세웠다.특히 반도체법을 언급할 때는 ‘군자호재 취지유도’(君子愛財, 取之有道· 군자도 재물을 좋아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그것을 취한다는 의미)라는 표현을 언급하면서 “미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국을 봉쇄하고 압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는 평화협상을 원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며 미국을 우회적으로 겨냥했다.◇ 풍선 사태 2주 만에 전격회동, 입장차 확인…일단 대화 물꼬, 확전은 피할듯이날 회동은 양국의 정찰풍선 갈등 이후 2주만으로, 약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됐다.정찰 풍선 문제로 대립하던 양국이 이번 뮌헨 회의를 계기로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양국 발표에 따르면 일단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다만 갈등 격화의 원인인 풍선 사태에 대해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밝히면서 미중 모두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피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블링컨 장관이 ‘중국과의 갈등을 원치 않고 신냉전을 향해 가고 있지도 않다’며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양국이 확전으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왕이 부장도 MSC에서 “미국이 중국의 발전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대하고 중미 관계가 건전하고 안정된 궤도로 돌아가도록 할 것을 요구한다”고 양국 관계 악화를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앞서 블링컨 장관은 지난해 11월 미중 정상회담 후속 논의를 위해 지난 3일 저녁 베이징으로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중국의 정찰풍선 문제가 불거지면서 무기한 연기했다.이후 미국은 이 풍선이 중국이 수년간 40여 개국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된 정찰 프로그램의 일환이라고 밝히면서 중국의 주권 침해 행위를 규탄하는 모습을 보였다.반면 중국은 미국이 지난 4일 격추한 풍선이 기상연구용이라고 반박하면서 미국 역시 자국 영공에 풍선을 진입시켰다고 주장하면서 갈등이 격화해 왔다.일각에서는 북미 지역에서 격추된 풍선 3개가 중국 소유가 아닌 민간용으로 알려지면서 이번 사태가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