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18일(현지시간) 독일에서 전격 회동했다. 정찰풍선 사건 이후 첫 고위급 직접 교류로 갈등이 더 악화하지 않도록 하자는 상황 관리 차원이었다. 그러나 1시간가량 대화에서 블링컨 장관은 중국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고, 왕 위원은 미국 대응을 ‘무력 남용’이라고 반박하며 격돌하는 등 평행선을 내달렸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블링컨 장관은 미국 영공에서 중국의 고고도 정찰기구가 주권과 국제법을 위반한 사실에 대해 직접 언급하며 무책임한 행위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또 “미국은 주권 침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5개 대륙 40개 이상 국가의 영공을 침범한 중국의 고고도 정찰풍선 프로그램이 세계에 노출됐음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
블링컨 장관은 특히 정찰풍선 문제가 불거졌을 때 왕 위원이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의 전화를 받지 않은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블링컨 장관은 CBS방송 인터뷰에서 “위기나 다른 상황에 부닥친 경우 잘못된 의사소통이나 오해가 없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왕 위원은 양국 갈등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며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가 19일 발표한 입장문에 따르면 왕 위원은 “미국이 할 일은 무력 남용이 미·중 관계에 끼친 손해를 똑바로 보고 해결하는 것”이라며 “미국이 기어코 사태를 확대한다면 모든 후과는 미국이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세계 최대 감시 정찰 국가인 미국은 중국을 모독하고 먹칠할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만남이 미국 측의 요청에 따라 진행됐고 비공식 접촉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왕 위원은 회동 전 열린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도 미국의 풍선 격추에 대해 “사실을 무시하고 전투기를 출동시켜 위협이 없는 비행선을 격추했다”며 “상상조차 할 수 없고 히스테리에 가까우며 국제협약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왕 위원은 “지구 상공에 매일 수많은 풍선이 떠다니는데, 미국은 이것을 다 격추할 것이냐”며 “이런 방법으로는 미국의 강대함을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인식 차를 드러냈다.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은 이날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중국이 전쟁 개시 이후 러시아와 관계를 심화시켜 가는 것을 우려와 함께 지켜보고 있다”며 “러시아에 치명적인 지원을 제공하려는 중국의 모든 조치는 침략을 보답하고, 살인을 지속하며, 규칙에 기반한 질서를 더욱 약화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블링컨 장관도 이날 CBS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공유한 것처럼 그것(무기 지원)이 우리 관계에 미칠 심각한 결과를 설명했다”고 말했다.
반면 왕 위원은 연설에서 “중국은 평화와 대화의 편에 서 있지만 일부 세력은 평화회담의 성공이나 휴전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며 “이 분쟁에서 더 큰 전략적 목표를 좇는 강대국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이 평화를 원하지 않아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고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그는 “며칠만 지나면 우크라이나 위기 1주년이 되는데 중국은 위기의 정치적 해결에 관한 입장문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왕 위원은 또 미국의 반도체지원법과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 등을 겨냥해 “일방주의와 사리사욕으로 세계무역기구의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회담 이전까지만 해도 양측 모두 고조된 긴장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며 “그러나 회동에서 드러난 모습은 기대와 차이가 있었다. (양국) 분위기가 다시 개선될지는 확실치 않다”고 전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