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뉴스타트는 2010년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장거리 핵탄두 숫자를 1550개 이하로 제한하고 상호 사찰을 허용하기로 한 핵무기 감축 협정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 연방의회에서 실시한 국정연설에서 “누구도 세계의 전략적 균형을 해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선 안 된다”며 “러시아는 뉴스타트 참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이 핵 실험을 한다면 우리도 똑같이 할 것”이라며 뉴스타트 복귀 조건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핵무기 통제를 내세웠다. 뉴스타트는 2026년 종료될 예정이었다. 푸틴 대통령이 국정연설에 나선 건 2년 만이다.
푸틴 대통령은 또 전쟁과 확전에 대한 책임을 서방에 돌리고 승전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는 “서방이 더러운 게임을 하고 있다”며 “서방은 우크라이나 전쟁 전부터 우크라이나에 핵무기 공급을 언급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특별군사작전’을 시작한 이유가 서방과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밀착 탓이라는 것이다. 이어 “러시아를 전장에서 패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7시간여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1000㎞ 떨어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최전선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폴란드 국민을 상대로 연설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단일대오를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연설 맞대결로 서방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진영과 러시아와 중국 등 권위주의 체제의 진영 대결도 재확인되는 모양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이날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과) 푸틴의 대결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당시 케네디와 흐루쇼프의 대결 이후 가장 직접적인 초강대국 지도자 사이 대결”이라고 전했다. 이어 “수십 년 동안 우세할 것으로 생각했던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모스크바와 베이징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더욱 밀착하는 모습이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은 이날 유럽 순방 마지막 일정으로 러시아를 방문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크렘린궁은 “우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왕 위원의 만남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의제가 명확하고 광범위해 이야기할 것이 많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의 전날 우크라이나 방문에 대해 “선거 국면에서 벌이는 쇼”라고 비난했다.
박재현 기자,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