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4, 5월쯤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째 계속되고 미국과 러시아가 사생결단식 대결을 예고한 상황에서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만남이 성사되면 미국 등 서방 대 중·러의 대립 구도는 한층 뚜렷해질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시 주석이 앞으로 몇 달 안에 모스크바를 방문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방러 논의는 초기 단계여서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다”며 “시 주석은 4월이나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이 있는 5월 초에 방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월에는 중국 정부 고위급 인선과 정책 결정이 이뤄지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열리기 때문에 시 주석이 해외 순방에 나설 여건이 되지 않는다. 러시아 외무부는 지난달 공개한 외교 결산 논평에서 “올해 러시아와 중국은 양자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것”이라며 “시 주석의 방문이 올해 양국 의제의 중심 행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20일 전 베이징에서 만나 ‘양국 우호에는 한계가 없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냈다. 이후 같은 해 9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도 정상회담을 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중국은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가하는 제재에 반대하면서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를 수입했고 군사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마이크로칩과 첨단 기술을 러시아에 수출했다. 외교적으로 경제적으로 러시아를 지지한 것이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회담을 강조하고 있다. 오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에 맞춰 전쟁에 관한 중국의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평화 회담 촉진을 위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2000년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과 미·중·일·러가 참여하는 6자 회담을 주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서방에선 평화 중재자를 자처하는 중국의 주도적인 외교에 회의적인 평가가 많다. 중재가 아니라 실상은 러시아를 편 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쑨윈 중국프로그램 국장은 WSJ에 “중국은 단지 평화를 촉구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전쟁 해결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며 “평화를 촉구하는 것은 값싸고 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은 22일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나 시 주석의 방러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왕 위원은 러시아를 방문하기 전 프랑스 이탈리아 헝가리와 뮌헨 안보회의가 열린 독일을 방문해 전방위 외교를 펼쳤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