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취하를 전제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5일 보도했다. 한국 정부가 6일 발표하는 일제 강제동원(징용) 노동자 피해배상 해법의 후속 조치로 보인다. 일본 언론은 또 한국의 피해배상 해법 발표 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반성과 사죄를 담은 과거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 표명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한·일 정부가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해제와 WTO 제소 취하를 함께 이행하는 방안을 조율 중이라고 보도했다. 징용 문제와 관련해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이 발표되면 수출규제를 해제할 명분이 확보된다는 게 일본 정부의 판단이다.
일본 정부는 2019년 7월 한국으로 수출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국내에서는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에 따른 보복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한국 정부는 그해 9월 수출규제는 정치적 동기로 이뤄진 차별적 조처라며 일본을 WTO에 제소했다.
한국 정부의 6일 해법 발표 이후 기시다 총리는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 정부가 징용 문제 해결책을 발표하면 역사 반성이 담긴 과거 담화를 계승한다는 방향으로 입장 표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오부치 전 총리는 과거 선언에서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를 밝혔다.
징용 판결의 피고 기업들은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한국 국내 움직임에 관해서는 코멘트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고, 일본제철은 답변을 피했다.
일본 언론들은 징용 배상 문제가 해결되면 양국 관계 회복이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징용 문제에 진전된 성과가 나오면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받았던 한·일 관계의 개선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교도통신은 “한·일 간 과거사 현안을 ‘일괄 패키지’로 해결하는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경제계에서도 악화한 채 방치된 한·일 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개선됐다며 환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간 일본 경제계는 양국 기업 교류가 활성화할 수 있도록 관계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을 강하게 제기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