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남동부에 위치한 마리우폴은 전략적 요충지다. 흑해 안쪽으로 깊숙이 자리잡은 아조우해를 접한 항구로, 오래전부터 최고의 무역항이자 산업도시였다. 유럽 최대 제철·제련소에서 생산된 철강제품과 돈바스산 광물자원의 수출통로였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침공 첫날부터 이 도시 점령에 사활을 걸었다. 2014년 강제합병한 크림반도와 친러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을 이어주는 교통요지인 이곳을 장악하면 아조우해 전체를 손에 넣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은 지금까지 당초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다. 아조우 특수 연대와 우크라이나 해병 1개여단 등 고작 3000여명으로 3만명 가까이 투입된 러시아군을 수차례 위기에 빠뜨리며 결사항전을 벌여왔다.
도시는 러시아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폐허 상태로 전락했다. 도시 전체 건물의 90% 이상이 전파됐으며 민간인 사상자만 1만명이 넘어섰다.
러시아는 도시를 완전 봉쇄해 식량·식수·전기 공급마저 끊고, 특수부대·체첸용병부대·DPR 민병대 등을 투입했다. 그러나 마리우폴은 아직도 확실하게 함락되지 않았다.
도시에는 약 13만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43만명에 이르던 인구의 3분의 1이 피난하지 못하고 매일 지옥에서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서방 언론들은 마리우폴에서의 결사항전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압도적인 독일군 병력을 패퇴시킨 소련군의 ‘레닌그라드 전투’와 비교하고 있다. 식량도 물도 탄약 보급도 없이 도시에 갇혀 중과부적의 상황을 뚫고 독일군을 돌려 세웠던 레닌그라드 전투처럼 우크라이나군의 마리우폴 결사항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무차별 폭격에 도시 자체가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지만 마리우폴은 침략자에게 결코 굴복하지 않는 우크라이나의 정신이자 상징”이라고 언급했다.
한달 이상 “조만간 점령될 것”이라는 엄포를 내놓던 러시아는 16일(현지시간) 국방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도시 전체를 우리가 장악했다. 우크라이나군에게 무기를 내려놓을 것을 제안한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어 “아조우 연대가 외부로 보낸 367건의 무전을 감청했다. 이들은 물도 식량도 없이 절망적 상황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조우 연대는 전날에도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을 통해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결사항전 동영상을 올렸다. 이들은 거의 매일 SNS에 “우리는 야만적인 러시아군의 폭압에 맞서 우크라이나, 아니 유럽 전체를 지키는 제1선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올려왔다.
이를 반영하듯 러시아 관영매체들에 따르면 전날 마리우폴에서 러시아 제8근위제병합동군 부사령관인 블라디미르 프롤로프 소장이 전투 중 사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최후통첩 사실을 접하자 즉각 대국민 영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는 마리우폴에 남은 모든 사람을 다 없애려 한다. 저항 중인 우크라이나군을 없앤다면 러시아와의 협상을 전면 중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욕타임스는 “소수의 마리우폴 수비대가 러시아 공격을 막아내며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우크라이나군은 동부 반격을 준비할 수 있었다”며 “러시아가 도시를 점령한다 해도 전쟁의 향방은 결코 그들 편이 아닐 것”이라고 예측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